[인문사회]6·25때 항복한 인민군 33% 심리전 영향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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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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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삐라로 묻어라/이임하 지음/476쪽·2만5000원·철수와영희

“스탈린의 앞잡이 김일성이는 쏘련 두목을 위하여 여러분을 희생시키고 있다.”

6·25전쟁 때 북측에 뿌려진 삐라(전단) 문구 중 하나다. 그림에는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김일성과 그에게 코뚜레를 끼워 조종하는 스탈린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삐라’라는 말은 영어 단어 ‘bill’의 일본식 발음인 ‘비라’에서 왔다. 이를 된소리로 발음해 삐라로 부른 것이다. 한국방송통신대 통합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전쟁과 여성에 관한 책을 써온 저자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 등을 뒤져 6·25전쟁 때 미국이 심리전을 펼친 대표적 수단이었던 삐라를 조사했다. 그리고 미국의 심리전이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획일성, 세계기구에 대한 맹신 등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 육군 장관 프랭크 페이스는 “적을 종이(삐라)로 묻어라”라고 지시했다. 미 극동사령부가 6·25전쟁 기간에 뿌린 삐라는 40억 장에 이른다. 지구 열여섯 바퀴를 덮을 만큼 엄청난 양이다. 당연히 많은 돈이 들었지만 비용 대비 효과도 우수했다고 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작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포로들이 항복한 이유의 33.1%가 심리전의 영향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선전전’ 또는 ‘사상전’이라는 용어를 ‘심리전’으로 바꿨고 6·25전쟁에서 심리전을 실험함으로써 심리전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에는 상당한 수의 삐라 사진이 수록돼 삐라를 구경해본 적 없는 젊은 독자에겐 흥미롭게 다가온다. 삐라는 북한군이 남쪽으로 넘어오면 환영하겠다는 안전보장 증명서이기도 했고, 음식을 주고 치료도 해주겠다며 좋은 대우를 약속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삐라에는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을 희화화한 삽화가 빈번하게 등장했고, 공산주의자는 뚱뚱하게 그려졌다. 공산주의자가 인민을 위하는 체하지만 결국 탐욕스럽게 인민을 착취하고 있음을 알려 공산주의 신화의 허구를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 같은 미국의 심리전 속에서 세계는 유엔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로 양분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은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한국 현대사를 지배해온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적’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삐라로 묻어버린 셈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인문사회#한국전쟁#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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