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쏜살같은 노통브의 짜릿한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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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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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아멜리 노통브 지음·최정수 옮김/176쪽·1만800원·열린책들

올해 작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벨기에 출신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스무 번째 소설 ‘아버지 죽이기’에서 한 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는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그린다. 열린책들 제공
올해 작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벨기에 출신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스무 번째 소설 ‘아버지 죽이기’에서 한 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는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그린다. 열린책들 제공
스물다섯 살에 데뷔해 올해 작가 생활 20주년을 맞은 벨기에 출신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해마다 한 권꼴로 신작을 펴낸다. 흔하면 귀하지 않다고 했던가. 오히려 그의 다작(多作)과 항상성이 문학적 이미지를 평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사실 별나게 치열한 작가다. “잠을 많이 자지 않으며 짐승처럼 일한다”는 이 작가는 매일 오전 4시가 되면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일 년에 보통 세 편 이상의 소설을 쓰며, 매년 12월에는 그해 쓴 소설들을 읽으며, 다음 해에 펴낼 책을 고른다. 이 때문에 미발표작만 70여 편에 달한다.

‘아버지 죽이기’는 노통브가 등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님들의 희망에서 벗어난다는 것, 즉 성인이 됨을 의미합니다. 전 이미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노통브의 한국어판 인사말에서)

작가로서 ‘성년’을 맞은 노통브는 한 인간이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얘기한다. 익숙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은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작가는 마술사, 곡예사, 딜러, 히피문화 등을 곁들여 21세기 미국 서부형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와 살아가던 열네 살 ‘조’는 다른 남성과 눈이 맞은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갈 곳 없던 조를 받아준 것은 유명 마술사인 노먼과 그의 여자친구인 곡예사 크리스티나. 새로운 가족에게 안온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조는 크리스티나에게는 강한 욕정을, 노먼에게는 질투심을 품는다. 결국 조는 노먼을 속이고 크리스티나를 차지할 비밀 계획을 세운다.

이 소설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려면 ‘조-노먼-크리스티나’의 삼각관계가 절정을 빚는 배경인 ‘버닝 맨(Burning Man)’ 축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매년 미국 네바다 주의 블랙록 사막 위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각종 음악, 미술 행사가 광활한 사막을 무대로 펼쳐지며, 참가자들은 일주일간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광란을 이어간다. 수만 명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지만 축제가 끝나면 감쪽같이 사라져 모래만 남는 공간. 그 달콤한 신기루 같은 곳에서 결국 조는 자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뛰어넘는다. 그만의 방법으로.

평이하고 간결한 문장, 그로 인해 빚어지는 속도감이 상쾌하다. 소수의 등장인물을 통해 그려지는 압축된 갈등, 그 균열점이 점점 벌어지는 과정도 세밀하고 설득력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독특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작가가 털어놓는 평이하고 단순한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큰 반전의 뒤통수를 맞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찌릿한 감전을 경험하면 작품이 무채색에서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듯한 생동감을 맛보게 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향기#아멜리 노통브#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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