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무엇이 호모 사피언스를 호모 데멘스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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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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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 마라/미하엘 슈미트-살로몬 지음·김현정 옮김
224쪽·1만2000원·고즈윈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바로 ‘호모 데멘스(광기의 인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유대인을 막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과업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뇌벌레’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 동아일보DB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바로 ‘호모 데멘스(광기의 인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유대인을 막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과업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뇌벌레’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 동아일보DB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다른 모든 학문이 진보하는 동안 정치 기술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으며, 400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한탄한 바 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이나, 올해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공천 뒷돈 같은 구시대적 정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을 보면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한 것 같다.

“사람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라고? 이 말은 ‘탭댄스를 추는 지렁이’나 ‘초식사자’라는 말처럼 정말 웃기는 얘기다!” 독일의 철학자인 저자는 인간에 대한 적절한 호칭이 ‘호모 데멘스(Homo Demens)’, 즉 ‘광기의 인간’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 그는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문장으로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만연한 인간의 어리석은 광기를 풀어나간다.

고즈윈 제공
고즈윈 제공
프리드리히 니체는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개별 인간은 현명한 ‘호모 사피엔스’였다가도, 집단을 이루는 인간은 ‘호모 데멘스’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 인간이여, 뇌벌레에 감염되었나?

저자는 ‘뇌벌레’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간디스토마의 유충은 개미의 신경중추에 침투해 개미의 행동을 조종한다. 개미의 머리 속에 침투한 이 ‘뇌벌레’는 개미를 풀잎 끝에 매달리게 해 염소나 양, 소, 토끼 등에게 잡아먹히도록 한다. 간디스토마가 최종 숙주인 동물의 간에 도달하기 위해 개미를 이용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뇌벌레에 감염된 인간에게도 이와 유사한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드는 예 중 하나가 종교다. “가상의 친구(신·神)를 옆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출정하는 정신 나간 침팬지는 없다”는 단언이다.

수많은 기업은 일회용품 소비를 부추긴다. “누구도 혼자라면 자원을 이렇듯 단시간 내에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지 않겠지만, 무리를 이룬 인간은 이런 행동을 과감하게 할 정도로 어리석어진다.”

국제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독일 연금기금은 ‘유로화의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다. 독일 국민은 연금을 보장받기 위해 유로화의 제살 깎아먹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웃긴’ 상황인 것이다. 저자는 “‘나보다 좀 더 멍청한 다음 사람’에게 떠넘기는 ‘행운의 편지’식 국제금융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예견한다.

○ 어리석음의 총합은 ‘어리석은 정치권력’

그런데 이런 모든 어리석음의 총합이 바로 ‘어리석은 정치권력’이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선 소신 있는 노선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여론조사’ 보고서가 정치인들에게 절대적인 신탁으로 등장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보는데도, 유권자들은 선거 때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질지 결정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여러 매체의 인터뷰어이자 기고가로 활동했다. 수년간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과 인터뷰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스템의 합리성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벌거숭이 임금님’에 나오는 왕의 신하들처럼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옷자락을 받는 시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금기를 깨뜨리는 개인의 이성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도 ‘어른들의 어리석은 속임수’에 아랑곳하지 않는 단 한 명의 꼬마가 궁정 전체의 광기를 무너뜨렸다. 그는 “대중의 지배적인 어리석음은 지배자의 어리석음으로 이어진다”며 바보 권력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

저자가 주장하듯 몇몇 개인의 이성적 각성으로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인간의 비이성적 문화가 깨질지는 의문이다.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이 책의 카타르시스는 각 페이지에 가득한, 명백히 정신 나간 종인 인간에게 쏟아 붓는 언어적 모욕을 대할 때 더없이 완벽해진다”고 평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권력을 주지마라#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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