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평온한 호텔 가면 무도회… 연쇄살인 고리를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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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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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양윤옥 옮김
504쪽·1만4800원·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사진)는 일본의 대표적 추리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그의 추리물은 어딘가 추리소설 같지 않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범인을 쫓는 수사진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히가시노는 사건 주변에 얽힌 다양한 인간 군상의 내면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심리 탐구’에 집중한다. 하지만 사건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막판 결정적인 해결의 열쇠로 드러날 때는 소름과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평온한 일상 속에 범죄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듯한 반전은 그렇기에 더 짜릿하다.

이 작품은 작가가 등단 25주년을 맞아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한 소설. 일본 독자 1만 명이 그동안 작가가 쓴 소설 77편 가운데 뽑은 인기 작품 5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다작을 하는 히가시노의 작품 편차가 큰 것을 감안하면 ‘안정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에 연쇄살인 3건이 일어난다. 범인이 현장에 의도적으로 남긴 숫자 메시지를 해독한 수사진은 다음 살인이 일어날 장소가 도쿄의 최고급 호텔인 코르테시아도쿄임을 알아낸다. 수사진은 호텔리어로 변신해 잠복 수사에 들어가고, 의문의 손님들이 하나둘 수사선상에 오른다.

제목에 있는 ‘가면무도회’라는 뜻의 ‘매스커레이드’에서 보듯 ‘가면’은 작품을 꿰뚫는 모티브다. 수사진은 손님들의 ‘가면’을 벗겨 범인을 잡아야 하고, 호텔은 수사에는 협조하지만 가급적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손님들의 ‘가면’을 지켜주려고 하는 상황. 수사진과 호텔리어들의 갈등이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긴박감이 높아진다.

히가시노는 앞서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가 교이치로 같은 매력적인 ‘탐정’들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닛타 고스케라는 30대 중반의 경시청 소속 형사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의 사건 해결법이 무척 매력적이다. 작은 단서들을 모은 뒤 꿰맞춰 범인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먼저 범인에 대한 가설을 세운 뒤 이를 증명하는 단서를 모으는 식이다. 과학자의 실험 증명 같은 그의 추리법은 무엇보다도 창조적이어서 놀라움을 준다. 추리물은 사실 형사와 범인의 싸움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다. 독자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히가시노의 상상력과 구성적 치밀함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가 어떻게 수십 년간 일본 추리물의 거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작품을 통해 말하는 듯하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호텔업에 종사하거나 호텔리어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절대적 위기에서 현명하게 행동해야 하는 건 수사진뿐만 아니라 호텔리어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호텔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할 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향기#문학#매스커레이드 호텔#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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