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뇌사 앞둔 환자와 아들… 누구를 살릴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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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임성순 지음/352쪽·1만2000원·실천문학

장기이식을 소재로 한 임성순의 장편소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아일보DB
장기이식을 소재로 한 임성순의 장편소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아일보DB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산다. 먹을 것, 탈 것 등 일상적인 것부터 연애나 학업, 직장 등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선택까지. 크건 작건 결정은 쉽지 않다. 하나를 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런 선택이 가진 고민과 갈등을 극대화시킨다. 장기이식과 아프리카 내전을 소재로 삼아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불가피한 선택’을 그린다. 장기이식이나 전쟁이나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누군가를 살리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작가는 말한다. “당신은 누구를 살릴 것인가. 그 선택의 잣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녕 옳은 선택인가.”

이 작가가 ‘컨설턴트’ ‘문근영은 위험해’에 이어 ‘회사 시리즈’의 마침표 격으로 내놓은 작품. 연애나 위로, 공감을 소재로 한 ‘가벼운 소설’이 많은 요즘 문학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명징한 주제의식을 가진 수작(秀作)으로 평가할 만하다.

선택의 문제를 들면 이렇다. 의사 범준의 아들은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다. 그 병원에 뇌사 판정을 앞둔 남성이 들어온다. 아들과 아내는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범준은 그 남성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혼자 목격한다. 범준이 침묵하면 뇌사가 확정되고, 아들은 살 수 있다. 의사의 도덕성을 택할 것인가, 아들의 생명을 택할 것인가.

작품은 고루한 인문적 성찰을 보여주기보다 날것의 현실을 직시한다.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배신과 억압이 횡행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범준은 뇌사자의 생명을 선택하고, 아들은 죽는다. 하지만 몇 달 뒤 자신이 살린 뇌사자가 허무하게도 자살을 택한다. 범준은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쉽게 말해 죽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과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연결해 줄 수는 없을까. 소위 윈윈(Win-Win)이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결국 범준은 이를 실행하는 ‘회사’를 차린다.

‘누구를 죽여 다른 누구를 살리는 장기거래를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도발하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정말 똑같이 평등하게 여기고 있는가, 벌레 같은 악인들의 생명도 소중한가…. 의료봉사를 간 범준과 해외 선교에 간 신부 박현석이 만난 15년 전 아프리카 내전 현장은 그런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을 보여준다.

봉사단체 회원들이 순수한 헌신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이곳에 오고, 현지 성직자는 그곳의 소녀에게서 은밀히 성욕을 채운다.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들도 사람의 목숨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현지인들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내전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황에 따라 피해자였다가 가해자로, 혹은 그 반대로 손바닥 뒤집듯 변한다.

선과 악의 기준 자체가 모호한 사회, 혹은 힘과 이익 논리에 따라 선과 악이 정해지는 사회에 대한 준열한 통찰이 곳곳에 번뜩인다. 우리가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적 작품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다정한 사람들#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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