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50개 직업 체험… 이젠 실패가 두렵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대니얼 세디키 지음·서윤정 옮김
336쪽·1만3800원·글담출판사

미국 조지아 주의 케빈 캘훈 공장에서 땅콩 껍질을 까는 일을 하다가 힘에 부쳐 누운 대니얼 세디키 씨. 그는 “50개 주 직업체험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인내심과 적응력, 그리고 인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글담출판사 제공
미국 조지아 주의 케빈 캘훈 공장에서 땅콩 껍질을 까는 일을 하다가 힘에 부쳐 누운 대니얼 세디키 씨. 그는 “50개 주 직업체험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인내심과 적응력, 그리고 인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글담출판사 제공
88만 원 세대, 청춘콘서트,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워주는 멘토들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26세 미국 청년 대니얼 세디키는 남에게 기대기보다 자기만의 색다른 도전으로 3년간의 백수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계속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고 전략을 배우고 성공을 위한 기술을 익히는 데 내 삶을 바쳐 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결국 실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지 않은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3년간 2000통의 이력서를 내고, 40번의 면접을 봤지만 취업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고용주들이 내 인생을 정해 주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미국 50개 주를 돌면서 50개의 직업을 체험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매일 16시간 동안 전국의 고용주들에게 전화를 한 끝에 일자리 몇 군데가 정해지자 무작정 떠났다. 다음번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디서 자게 될지, 무엇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루에 수백 km를 운전하고, 낡은 지프차에서 침낭을 덮고 3∼4시간 잠을 잤다.

네브래스카 주에서는 옥수수농장, 위스콘신 주에서는 치즈공장에서 일했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을 감시하는 국경 경비원이었고, 캔자스 주에서는 냉동육 포장 점원이었으며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선 광원, 하와이에서는 서핑 강사, 앨라배마 주에선 미식축구팀 코치였다. 틈틈이 인터넷 블로그도 운영했다.

그의 여행은 조그만 지역신문에 실리기 시작해 CNN, ABC, 폭스뉴스 등에서 방영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한 방송사에서는 그의 여행을 ‘리얼리티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방송국이 관여하면 고용주들도 나를 다르게 대할 것이고, 연출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은 마치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처럼 힘들지만 유쾌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특히 미국 각 주에서 만난 끈끈한 사람 이야기가 제맛이다. 20대인 저자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서고, 켄터키 주에서 말 사육사로 경주마의 출산을 돕고, 오하이오 주에서 기상캐스터로 카메라 앞에 서면서 느꼈을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의 여행이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이 잃어버렸던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미국인들 중 평생 자신이 태어난 주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저자가 마치 50개국 여행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기고 격려했다.

저자는 1년여간의 여행을 마친 후 어떤 직업을 갖게 됐을까? 사실 이 점이 가장 궁금했는데,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저자의 페이스북을 통해 요즘 근황을 물었다.

“여행을 마친 후 경제학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시절 운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지금은 시카고대 육상팀의 헤드코치로 일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에 대한 실전 경험을 통해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유럽 배낭여행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횡단 오토바이 여행, 심지어 극지 마라톤에까지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처럼 국내 곳곳에서 사람들과 진하게 부딪쳐 보는 여행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포항제철에서 쇠를 녹여 보고, 거제도에서 배를 만들어 보고, 제주도에서 말을 길러 보고, 외로운 섬에서 등대지기도 해보고…. 남들과 똑같은 스펙 쌓기에 매몰돼 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세디키의 도전은 훌륭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저히 직구를 준비해 왔어도, 인생에는 변화구를 던져야 할 때도 있다”며 “나는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책의 향기#실용 기타#꺼잣것! 한번 해보는 거야#직업 체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