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독재타도” 외쳤던 그들의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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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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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권여선 지음/432쪽·1만2000원·창비

‘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하라고 지시하는 음악 용어다. 이 소설은 무엇을 잇는가. 1980년 전후 독재 반대 투쟁에 나섰던 운동권 학생들의 열정적인 고음으로 시작한 노래는 세월의 때가 묻고 중년이 된 이들이 읊조리는 저음으로 이어진다. 부드럽고 처연한 노래가 끝나 책장을 덮으면 울컥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듯하다.

30여 년 전 ‘카타콤’이라 불리던 반지하 서클룸에서 모인 전통연구회 회원들은 은밀히 반독재 투쟁에 나선다. ‘학우여, 총궐기하며 반민주 유신독재를 철폐하자’는 유인물을 만들고 학내 사복 경찰들의 눈을 피해 뿌린다. 잡히면 모진 고문과 고초가 뻔한 일. 겁이 난다는 후배들에게 선배는 강압적으로 외친다. “니 나이 때 전태일 열사는 분신까지 했다.”

세월은 변했다. 전통연구회 회장이었던 박인하는 노련한 국회의원이 됐고, 그 선배를 따르던 조준환은 박 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다른 회원들은 저마다 교수, 출판기획사 사장으로 산다. 잊고 지냈던 청춘 시절은 함께 활동하다가 돌연 실종됐던 오정연의 동생이라는 하연이 등장하며 하나하나 복기된다. 오정연은 서클의 ‘퀸’ 같았던 존재. 30여 년을 오가며 인물들의 숨겨진 얘기들이 드러나고, 실종된 오정연의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며 작품은 교향곡처럼 거대한 서사로 변한다.

19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를 펴낸 뒤 16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장편. 인물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생생하게 펼쳐지는 작품 배경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선명하다. 광주 사투리나 프랑스어 등이 끼어드는 인물들의 대화도 감칠맛 난다. 몇몇 복선이 두드러져 하연의 실체나 정연의 현재 상황이 어렵지 않게 중간에 유추되는 점은 아쉽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향기#문학 에술#레가토#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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