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그녀의 세포 지금도 불멸의 증식 생명공학 성취, 그녀에게 빚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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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쿨루트 지음·김정한, 김정부 옮김
512쪽·1만8000원·문학동네

‘이 女人의 이름은 헨리엔타 랙스, 의사들은 그녀를 헬라라고 부른다’ 자궁경부암 사망, 1951년 유족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그런데 살아있다고? 죽기 전 떼어낸 세포 배양 증식에 성공, 전 세계의 실험실로….(문학동네 제공)
‘이 女人의 이름은 헨리엔타 랙스, 의사들은 그녀를 헬라라고 부른다’ 자궁경부암 사망, 1951년 유족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그런데 살아있다고? 죽기 전 떼어낸 세포 배양 증식에 성공, 전 세계의 실험실로….(문학동네 제공)
1951년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라는 이름의 미국 흑인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다. 암의 전이가 빨라 그는 진단 4개월 만에 구토와 발열 등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가족들은 분명 랙스를 땅에 묻었다. 그런데 1973년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0채 규모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존재하고 있었다. 의학연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헬라(Hela)세포가 그의 자궁경부에서 떼어져 배양돼 왔던 것이다. 그래서 세포 이름도 그의 성과 이름의 앞 철자 두 개씩을 따온 ‘헬라’다.

고교 때 처음 헬라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10년간 이 세포를 추적했다. 헬라세포의 ‘주인’인 랙스의 삶뿐만 아니라 헬라세포와 의학사, 인간조직을 이용한 의학연구의 윤리적 문제 등을 망라해 이 책에 담았다.

헬라세포는 그가 사망하기 전 병을 진단한 존스홉킨스병원의 의사가 떼어내 같은 병원의 조지 가이 박사에게 맡겨 배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인간 세포를 계속 살리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그런데 랙스의 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20배나 빠른 속도로 자라며 24시간마다 두 배씩 늘어났고 먹을 것만 있으면 증식을 멈추지 않았다. 인류 최초로 ‘불멸의 세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후 헬라세포는 전 세계 의학연구실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헬라세포는 암을 유발하거나 억제하는 유전자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세포의 분열 과정 중 단 하나의 단백질만 잘못 활성화돼도 암에 걸릴 수 있고 세포분열이 헝클어지면 그것이 몸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헬라세포를 통해 알게 됐다. 소아마비백신, 항암화학치료, 유전자지도, 체외수정 같은 인류 의학의 획기적인 업적에도 큰 기여를 했다.

헬라세포를 채취할 때 의사는 주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세포는 지금 영리 세포은행과 생명과학회사에 의해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마이크로바이올로지컬 어소시에이츠는 헬라세포를 팔면서 설립된 회사였고 훗날 세계에서 가장 큰 생명공학회사인 인비트로젠과 바이오휘터커에 합병됐다. 인비트로젠은 헬라세포 한 병을 지역에 따라 1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판매한다. 미국 특허청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면 헬라세포와 관련된 특허건수가 1만7000건이 넘는다.

저자는 헬라세포 얘기를 통해 환자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윤리적인 문제와 세포의 상업화에 따른 금전적 이득의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환자의 사전 동의 없이 진단 과정에서 떼어둔 세포가 연구에 사용된다. 윤리학자 법률가 의사 환자들로 구성된 활동가들은 인간에게 자신의 신체 조직을 통제할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라고 촉구한다. 또 핵무기나 낙태, 인종차별 등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는 연구에 자기 세포가 이용되는 것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포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특수 염색 처리한 헬라세포의 분열모습.
세포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특수 염색 처리한 헬라세포의 분열모습.
금전적 보상을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자 윤리학자 과학자들이 기초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기부를 많이 할수록 보상을 많이 받게 하는 사회보장식제도, 기부자에 대한 세금탕감 정책, 음악처럼 사용될 때마다 요금을 지불하는 로열티제도, 조직연구에서 나오는 수익의 1%를 과학 또는 의학 관련 자선기금에 기부하거나 수익의 전부를 연구에 재투자하게 하는 방식 등이다. 환자에게 직접 보상하는 제도는 수익 추구자를 양산함으로써 결국 과학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데서 부정적 시각이 많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관별로 사전 동의를 구하고는 있지만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역자 중 한 사람인 김정한 한림대 의대 부교수 및 강남성심병원 항암센터장은 “의학의 발전과 환자의 권리 모두를 고려해 적절한 방안을 찾는 노력을 우리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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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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