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신묘한 ‘초의차’ 계승자의 茶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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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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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박동춘 지음/388쪽·1만9800원·동아시아

한국 차의 역사는 신라 말기 선종과 함께 유입되면서 시작됐고,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사찰의 주도하에 송나라에 비견될 만큼 차 문화가 융성했다. 조선시대 배불(排佛)정책으로 사멸 위기에 처했던 우리 차문화가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초의 선사(1786∼1866)가 있었다.

선종의 대표적인 ‘선다(禪茶)’ 정신을 이은 초의 선사가 인식한 차는 단순한 마실 거리가 아니라 정신적 수행의 삼매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그는 이러한 구도정신을 담아 필생에 걸쳐 ‘초의차’를 완성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차’를 마신 후 “심폐가 시원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저자는 초의 선사의 고향인 전남 무안군 삼향을 기점으로 그가 거쳐 간 운흥사, 쌍봉사, 대흥사, 학림암 등을 찾아가 다성(茶聖)이 남긴 정신과 인연의 흔적을 좇는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청년 시절의 초의에게 시학과 주역을 가르쳐준 다산 정약용, 초의와 동갑내기 친구로서 맑은 정신의 세계를 교감했던 추사 김정희, 절창의 시문으로 ‘초의차’의 웅대한 경지를 묘사했던 박영보와 신위, 황상…. 이 책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차와 시를 주고받았던 ‘초의차의 인문학’이 담겨 있다.

초의가 만든 차는 유배지에서 신체의 고통에 시달리는 선비들에게 ‘약’ 이상 가는 효능을 발휘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유배지 제주도로 떠난 추사는 ‘걸명시’를 지어 전하며 ‘초의차’를 부탁했다. 초의가 북학파 경화사족 등 유학자들과 교유를 확대하는 데도 차와 시가 매개물이 됐다. 초의와 추사, 당대의 문사 등 세대와 신분을 넘고, 유불선이 한데 만나는 네트워크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공유하며 서로의 자긍심을 키워 나갔던 한국의 미학과 인문학의 근원을 이야기해준다.

‘초의차’ 5대째 계보를 이은 저자는 이 책에서 응송 스님에게 전해 받은 친필 ‘다도전게’를 공개했다. 저자는 “일본이 찻잎을 찌기만 하고 중국이 찻잎을 볶기만 한다면, 우리는 찻잎을 볶으면서 뚜껑을 덮어 열기로 찌는 공정을 절묘하게 합쳐 차의 독성을 중화해 차의 효능을 드러내는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초의차는 ‘동자처럼 젊어지고 팔십 노인의 얼굴에 붉은 빛을 띠게 하는 신묘한 효능을 지녔다’고 전해져 온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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