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식 게릴라’ 지젝에게 묻다… 현실에서 공동선은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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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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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인디고 연구소 기획/346쪽·1만8000원·궁리

류블라냐 자신의 아파트 서재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젝. 63세인 그는 어린 아들과 둘이 음료수 빼곤 텅 빈냉장고가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자신의 책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경우 두 권씩 소장하는데 한국어 책도 빠짐없이 갖고 있다고 한다. 궁리 제공
류블라냐 자신의 아파트 서재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젝. 63세인 그는 어린 아들과 둘이 음료수 빼곤 텅 빈냉장고가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자신의 책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경우 두 권씩 소장하는데 한국어 책도 빠짐없이 갖고 있다고 한다. 궁리 제공
슬라보예 지젝은 지식 게릴라다.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철학 그리고 마르크스이론으로 무장한 그는 전통적 이론체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그것은 ‘칸트(윤리)와 함께 사드(쾌락)를’이라는 라캉의 명제를 모토로 삼아 미학, 철학, 정치학의 영역을 철저히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책과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뉴스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지젝의 글을 읽으면 멍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칸트가 쓴 텍스트와 사드가 쓴 텍스트를 병치해 읽어내는 것, 라캉의 복잡한 정신분석학 이론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같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영화를 뒤섞는 것, 이라크가 보유했다고 믿어지던 대량살상무기와 히치콕 영화 속 ‘맥거핀(속임수 장치)’의 유사성을 논하는 것….

미학의 영역에서 출발한 그의 이러한 신출귀몰한 이론작업은 최근 급격히 정치화하고 있다. 그는 세계화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몰락하고 있으며 새로운 좌파의 기획으로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새로운 혁명(불가능한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지젝의 정치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집이다. 일본의 지성 가라타니 고진과 프랑스의 지성 알랭 바디우 등의 인터뷰집과 함께 기획됐다. 부산 인디고 서원 부설 인디고연구소(InK)의 연구원 6명이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의 지젝 자택을 방문해 6시간에 걸쳐 진행한 심층 인터뷰의 산물이다. InK는 중고교생 시절 인디고 서원이 2004년부터 매주 진행해온 청소년 독서 세미나에 참여했던 인문학 전공자의 연구모임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갈수록 공적영역이 축소되는 현실에서 공동선(common good)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지젝의 답은 ‘윤리의 정치화’를 통해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도래하는 윤리적 문제들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느냐는 정치적 결단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자본주의의 해체지만 폭력혁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저에게 공산주의는 해답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도 구체적 대안은 없다. 다만 자본주의 이해에 충실한 국가의 폭력에 맞서 두려움 없이 그것에 맞서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스민 혁명’이나 ‘월가 점령시위’가 그 좋은 모델이다.

글이 아니라 말로 접하는 지젝은 허점이 제법 많다. 그는 전통적 좌파와 차이점을 수없이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여전히 좌파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국가로 출발한 북한에서 “미개하고 잔혹한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평하는 것은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에게 자본주의가 억압적 상징계라면 좌파는 자기도취적 상상계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미덕은 이렇게 요약하면 좋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지젝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다. 지젝처럼 사유하는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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