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우리를 바라본 그들의 껄끄러운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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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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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432쪽·2만3800원·글항아리

돼지를 지고 장에 가는 한국인 짐꾼.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남긴 사진 중 하나가 짐꾼의 모습이다. 잭 런던은 “한국인이 가장 잘하는 건 묵묵히 짐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항아리 제공
돼지를 지고 장에 가는 한국인 짐꾼.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남긴 사진 중 하나가 짐꾼의 모습이다. 잭 런던은 “한국인이 가장 잘하는 건 묵묵히 짐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항아리 제공
“명에서 보낸 사신 대부분은 환관, 특히 조선 출신의 내시들로 주구(誅求)와 횡포가 심해 조선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기이한 건 그럼에도 조선이 명을 하늘처럼 섬겼다는 사실이다.”(청나라 말기의 사학자 맹삼)

“백인 여행자가 처음 한국에 체류할 경우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와 자살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한국인은 나약하고 게으르며 도둑질을 잘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불필요하게 호기심이 많다.”(20세기 초 종군기자로 대한제국에 온 미국인 작가 잭 런던)

조선 시대에는 일본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 땅을 밟은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은 조선 초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이 땅을 다녀간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조선을 가장 자주 다녀간 이는 중국 사신이었다. 명이 사신을 파견한 횟수가 188회, 청은 245회에 이른다.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온 이유는 은 때문이었다. 명의 환관 왕민정은 조선에 오기 위해 막대한 은화를 뇌물로 바쳤고, 1625년 조선에 와 은 13만 냥을 챙겨갔다. 공식 신분은 칙사였지만 실제론 강도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명나라 칙사들이 조선에서 보인 탐욕과 무례, 비리는 후대에까지 문제가 됐다. 상대적으로 청나라 칙사들은 신사에 가까웠음에도 조선은 명을 하늘로 받들고 청을 오랑캐로 취급했다. 이것이 청나라 지식인의 눈엔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군사는 ‘다국적군’이었다. 태국, 티베트, 인도, 미얀마는 물론이고 포르투갈 사람까지 포함돼 있었다. 독특한 생김새의 포르투갈 사람을 조선인들은 해귀(海鬼)라 불렀다. “(해귀는)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과 사지, 온몸이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검은 양모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 중원 사람도 이들을 보기 쉽지 않다.”(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19세기 조선에 온 선교사 다블뤼 주교는 조선인들이 따뜻한 가족애와 이웃끼리 서로 돕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미국 작가 잭 런던의 기록에서 보듯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 땅을 밟은 서양인들의 조선에 대한 인상은 부정확하고 편견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편견에 가득 찬 그들의 기록 일부는 1982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처럼 20세기 후반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는 내용을 접하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낸 조선 사람들의 몇몇 특징은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도 발견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단지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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