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茶山의 준엄한 제자사랑 “내외가 따로 거처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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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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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592쪽·2만3800원·문학동네

“네 말씨와 외모, 행동을 보니 점점 태만해져서, 규방 가운데서 멋대로 놀며 빠져 지내느라 문학 공부는 어느새 까마득해지고 말았다…. 진실로 능히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뜻을 고쳐, 내외가 따로 거처하도록 해라.”

장가들어 신혼의 재미에 빠진 제자의 공부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 스승이 제자에게 각방을 쓰라고 훈계한 것이다. 제자는 노한 스승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뒤 신혼집을 뒤로하고 절로 올라갔다.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의 전남 강진 유배 시절 제자 황상(1788∼1870)의 이야기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묶은 이 책은 다산과 황상의 각별한 사제의 정을 담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사제의 정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강진으로 유배 온 이듬해인 1802년 다산은 자신이 머물던 주막집 봉놋방에 작은 서당을 열었다. 여기서 열다섯 살 소년 황상을 만난다. 스스로를 ‘둔하다’며 자책하는 소년에게 다산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며 격려한다. 이후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의 ‘삼근계(三勤戒)’를 마음에 새기며 평생 산속에서 공부에 전념했다. 현재 그의 문집 ‘치원유고’와 ‘치원소고’가 남아 있다.

다산은 신혼의 제자에게 각방을 명할 정도로 공부하라고 닦달했지만 황상이 써온 시에 “제자 중에 너를 얻어 참 다행이다”라고 적어 보낼 만큼 각별한 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산이 유배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온 뒤 황상도 강진 읍내를 떠나 백적산 깊은 골짝으로 들어가 살면서 둘의 연락은 두절된다. 서로의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1836년 둘이 18년 만에 재회하고 얼마 뒤 스승은 눈을 감는다. 저자가 발품 팔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과 황상의 인연을 한 꺼풀씩 벗겨보는 것이 흥미롭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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