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랑하고 보니 여인이었소”… 세종 며느리의 금지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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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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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홍/김별아/지음 322쪽·1만3800원·해냄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한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역사적 인물이 내게 다가올 때 글을 쓴다’는 ‘미실’의 작가 김별아는 이 한 줄의 기록을 통해 봉빈을 만났다. 봉빈은 문종의 세자빈으로 궁궐에 들어갔다 폐빈 당한 인물. 그 이유도 기이했다. 궁궐 안의 여종 소쌍과 정분을 나눴기 때문이다. 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동성애 사건의 당사자인 봉빈은 이후 행실이 단정치 못한 여자로 평가받아 왔다.

그것만이 전부일까. 수많은 사람이 ‘갇힌 채’ 생활하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공식적으로 사랑이 허락된 사람들은 왕족밖에 없다. 하지만 사랑은, 성욕은 없앨 수 없는 인간의 본성. 작품은 사랑이 금지된 공간에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그린다.

아름다운 외모의 봉빈은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첫날밤을 맞지만 남편 문종은 그녀를 소 닭 보듯 한다. 세자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머릿속에 가득한 문종에게 여자와의 사랑은 뒷전이었다. 문종의 무심함에 봉빈은 낙담하고 절망하며,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그때 우연히 소쌍을 만난다. 소년 같은 소녀인 소쌍의 살 냄새, 인간적인 온기에 봉빈은 사랑에 눈뜬다.

궁녀나 내시 등 궁궐 사람들의 금지된 욕망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궁녀 사이에는 동성애 관계를 맺는 대식(對食) 행위가 만연했는데 그 연유 가운데 하나가 상궁이 되기 전 나인들은 두 명씩 짝지어 10∼20년 동안 한 방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내시 중에 완전히 거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인들과 몰래 정분을 맺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 때문에 진짜로 거세가 됐는지 때때로 검사를 하기도 했다.

봉빈의 동성애도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수많은 ‘몰래한 사랑’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봉빈은 동성애가 탄로 나자 이렇게 절규한다. “그저 사랑하고 나서 보니 사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사랑한 사람이 여인이었을 뿐이다.”

역사소설 ‘채홍’을 펴낸 김별아 씨. 해냄 제공
역사소설 ‘채홍’을 펴낸 김별아 씨. 해냄 제공
작가는 동성애 소재가 자칫 선정적으로 보일까 염려했다. 작품에는 대식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등 자극적인 부분이 자주 나온다.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들로 여겨지며, 그 수위도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단지 봉빈과 소쌍의 동성애가 중심 소재인데도 이들의 만남은 중반 이후 시작되며 봉빈의 일방적인 구애에 가까워 애틋한 느낌은 덜하다. 둘의 사이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욕구 해소의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종의 아버지인 세종이 엄격하고 고지식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이채롭다. “역사는 강자, 승자 위주의 기록이다. 봉빈에 대한 기록 또한 세종이 말하고 실록을 통해 전해지는 게 전부다. 봉빈과 같은 여성, 그리고 패자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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