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건축가’ 퇴계 이황, 그의 걸작 도산서당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 철학으로 읽는 옛집/함성호 글·유동성 사진/332쪽·1만5000원·열림원

시인이자 건축가인 저자가 옛 학자들의 집을 답사했다. 집에는 그것을 설계한 사람의 사상과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먼저 소개하는 곳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소재 독락당(獨樂堂). 조선 철학을 이(理) 중심으로 파악한 선구적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이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마흔 즈음에 기거하던 곳이다.

한국 전통 건축은 구조물뿐 아니라 자연을 품고 있는 자리도 함께 감상해야 한다. 독락당에는 솟을삼문(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보다 높게 세운 형식)이 없다. 대문을 만들고 담을 쌓는 대신 집의 경계를 주변의 사산(四山)으로 확장했다. 담장에 뚫린 살창을 통해서는 동편으로 흐르는 자계천의 냇물이 보이도록 했다. 주인과 하인의 공간을 분명히 구분하면서도 하인이 주인을 가까이서 보필할 수 있도록 가깝게 두었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특히 주인과 하인의 공간 구분에는 이(理)와 기(氣)는 서로 섞이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다는 주희의 사상이 그대로 적용됐다”고 평했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긴 유학자는 퇴계(退溪) 이황이다. 고향에만 다섯 채가 넘는 집을 지으며 성리학적 세계관을 건축 조영에 적용했다. 저자는 퇴계의 학문적 발전 단계와 마찬가지로 건축도 그의 생애 시기별로 세 단계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퇴계가 인생 3기 때 지은 도산서당을 최고로 꼽았다. 퇴계는 여기서 담을 연결해 쌓지 않고 띄엄띄엄 나무처럼 배치했다. 담이 가지는 경계의 기능은 활용하지 않고 공간을 구획하면서 비워진 틈으로 풍경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만물에 작용하는 원리인 이(理) 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