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기부가 늘어난다고 빈곤층이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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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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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의 덫 걷어차기/딘 칼런, 제이콥 아펠 지음·신현규 옮김/399쪽·1만7000원·청림출판

‘단순하게 돈을 기부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일까.’

이 질문은 복지가 화두인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단순한 복지 확대가 시행자의 선량한 의도대로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야무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의 불균형을 극복하면서 공동체의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이념을 떠나 누구나 지지하는 구호다. 문제는 방법이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빈곤퇴치 운동가인 딘 칼런과 빈곤퇴치 운동가인 제이콥 아펠이 행동경제학을 활용해 빈곤퇴치 효과를 높이는 다양하고 정교한 방법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들은 “빈곤층을 위해 수표를 끊어주는 것은 물론 선한 행동이다. 하지만 선량함만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매년 200만 명의 빈곤 국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설사병을 보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워터가드’라는 염소소독제를 떨어뜨려 식수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럼 기부금을 모아 사람들에게 공짜로 약을 나눠 주면 될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약을 그다지 열심히 사용하지 않았다.

워터가드를 무료로 지급하거나 반값에 판매하는 방법, 마을 단위 또는 일대일로 워터가드의 효과를 홍보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을 케냐의 여러 마을에서 시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샘물이나 우물가에 워터가드를 떨어뜨리는 기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물을 길으러 갈 때마다 ‘워터가드를 떨어뜨려야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집 안 어딘가에 굴러다닐 약병을 찾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앴다.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 워터가드를 떨어뜨림으로써 홍보 효과도 높일 수 있었다. 행동경제학적 해법으로 ‘마지막 1마일’ 문제를 극복하고 수혜자에게 효율적으로 다가선 것이다. 무료로 나눠 준 마을에서는 잠시 약을 사용하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물에 투여 기계를 설치한 마을은 워터가드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설사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났다.

농부들의 주머니가 두둑한 추수철에 내년용 비료를 쿠폰 형태로 미리 판매함으로써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케냐 농부들의 비료 사용량을 늘렸다. 물론 이는 생산량 증대로 이어졌다. 비료가 필요한 시기에 판매했을 때는 농부들이 구입을 차일피일 미뤄 비료 사용량이 적정 수준까지 오르지 않았지만, 선불을 주고 쿠폰을 구매했을 때는 농부들은 배달되어 온 비료를 모두 다 뿌렸다.

빈곤퇴치 문제를 두고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선진국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교수는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제대로 된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며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얼마나 집요하고 꼼꼼하게 집행되는지를 살피면 국제기구의 집행 방식을 더 효율적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강조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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