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인물 불러 현실에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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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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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들의 시대/김성한 지음/376쪽·1만3800원·동아일보사

‘뿌리 깊은 나무’ ‘계백’ ‘무사 백동수’…. 사극 열풍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동시대 이슈와 가십을 분절하고 무한 확장하는 사이, 다른 편에서는 흘러간 역사를 재구성한 작품들이 사랑받고 있다. 역사는 다시 올 수 없지만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된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부르는 ‘판타지 저장고’인 것이다. 큰 인물들의 호방한 행보나 은밀한 음모가 이런 ‘신화’의 재현에 더욱 무게를 싣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해방 정국을 거쳐 근현대사에 이르는 다양한 시간적 배경을 지닌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지난해 별세한 저자가 2002년부터 2년간 ‘월간 에세이’에 연재한 ‘하남야화(霞南夜話·하남은 저자의 호)’와 2006년 ‘월간 한글+한자문화’에 실은 ‘제3의 기회’, 2007년부터 3년간 같은 잡지에 연재한 ‘야화동서’를 한 권으로 묶어냈다.

‘역사 에세이’라는 아리송한 부제는 ‘역사를 곁들인 에세이’로 읽을 수 있다. ‘지금 여기’ 일어나는 일을 화두로 삼은 뒤 이에 걸맞은 역사 속 에피소드들을 붙여 소개하며 5∼10쪽의 짧은 에세이들을 풀어낸다.

이승만, 이기붕, 박마리아, 앤드루 카네기, 정주영, 이광수, 칭기즈칸 등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다양한 ‘거인’이 등장인물로 이름을 올린다.

‘입’이라는 글에서는 고질적인 기술 유출 문제를 토대로 ‘한국 사람들은 원래 입이 쌀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시곗바늘을 410년쯤 뒤로 돌려 임진왜란 당시 화평 회담 장면을 불러낸다. 입이 헤픈 조선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혀를 차는 당시 명나라 대표단 전언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6·25전쟁 때 국민방위군 사령관의 예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시대를 가리지 않는 저자의 해박한 역사 지식이 돋보인다.

‘황사’에서는, ‘초지였던 몽골 고원에서 왜 황사가 시작됐을까’ 같은 일상적인 물음으로 주의를 끈 뒤 만주족과 몽골족의 얽히고설킨 근대사를 진지하게 불러낸다.

1950년 등단한 저자는 영국 역사나 그리스 신화, 우리 역사를 소재로 다양한 역사소설을 실험하고 개척한 소설가이자 월간 ‘사상계’ 주간,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던 언론인. 책은 작가적 글맛과 언론인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며 칼럼과 사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볍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도 해학과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다.

저자는 책에서 ‘거인들의 시대는 갔다’고 현대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식언, 궤변, 음모, 불법, 억지가 공공연히 통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흩어져 원심분리 작용을 일으키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소인천하(小人天下)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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