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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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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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언 브레머 지음·차백만 옮김/320쪽·1만7000원·다산북스
◇ 그림자 시장/에릭 와이너 지음·김정수 옮김/404쪽·2만 원·랜덤하우스코리아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외침이 거세다. 탐욕과 부패로 물든 카지노 자본주의를 개혁하라는 시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거대한 시장붕괴 현상 앞에서 ‘국가의 역할’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이전까지 시장에 맡겨두었던 의사결정 권한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통제권은 금융수도에서 정치수도로 옮아간다. 뉴욕 월가에서 워싱턴으로,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상파울루에서 브라질리아로, 뭄바이에서 델리로,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전 세계적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는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했지만, 21세기 들어 10년간 자본의 공영화, 공적투자, 국영화는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브레머의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등장이 향후 글로벌 세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분석한다.

2009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세계 경제침체가 미국의 금융규제 실패 때문에 일어났다”고 비난했다. 그의 비난에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보다 더 뛰어난 시스템이라는 의미가 넌지시 깔려 있었다.

현재 중국 러시아 등이 내세우고 있는 국가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더는 공산주의도, 중앙계획경제도 아니며 자본주의를 포용한다. 다만 목적이 다를 뿐이다. 국가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익이 아니라 정치권력 유지다. 이들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역동적인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극대화하기를 원한다. 정부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들은 원유를 수출해 얻은 막대한 돈으로 정권의 안정과 국민의 복종을 사들인다.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들을 해외로 진출시켜 석유, 가스, 금속, 광물 등에 대한 장기 사용권을 확보한다. 러시아에서는 총리가 TV 카메라와 함께 폐쇄된 공장을 방문해 기계를 돌릴 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현재 세계 원유매장량의 3분의 2는 러시아, 중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영 석유회사가 소유하고 이다. ‘포브스’가 2009년에 발표한 세계 5대 기업에는 중국 궁상(工商)은행, 차이나 모바일, 페트로 차이나가 포함돼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금융위기는 대부분 갑작스러운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됐다. 유동성은 시장을 작동시키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위기는 너무 많이 풀린 돈 때문에 발생했으며, 너무 흔해진 달러화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최대 채권국은 국가자본주의를 내세우는 중국과 중동의 산유국이다. 동아일보DB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금융위기는 대부분 갑작스러운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됐다. 유동성은 시장을 작동시키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위기는 너무 많이 풀린 돈 때문에 발생했으며, 너무 흔해진 달러화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최대 채권국은 국가자본주의를 내세우는 중국과 중동의 산유국이다. 동아일보DB
와이너의 ‘그림자시장(Shadow Market)’은 국가자본주의 국가들의 국부펀드가 사모펀드, 헤지펀드와 함께 앞으로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세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전 세계 국부펀드는 50개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8년 초 국부펀드는 6조 달러를 넘어섰고 그중 3분의 1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에 수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한 건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였다.

국부펀드는 대부분 비밀리에 운용되는 데다 정치적 목적도 곧잘 개입된다. 자원과 돈을 정치화하는 것은 러시아 베네수엘라 중국뿐이 아니다. ‘인권과 도덕성 기준’에 따른 투자지침을 갖고 있는 노르웨이 정부의 석유펀드는 2009년 9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이스라엘 기업 엘비트시스템스의 지분 60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저자는 “노르웨이가 국부펀드를 통해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것이나, 중국이나 리비아의 투자전략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 시대를 맞아 각국은 국가자본주의로 변모해야 하는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저자 브레머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장을 적절히 규제하는 데 실패한 것을 두고, 시장 자체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정부의 대규모 시장 개입은 자유시장의 포기보다는 구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비록 세계 금융위기가 매우 심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융위기 이전 30년간의 유례없는 호황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 1980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 각국은 정부 부문의 민영화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을 거의 150% 키웠다. 중국, 러시아 같은 가난한 나라가 글로벌 경제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자본주의 이전에 자유시장경제의 도입 때문이었다. 반면 쿠바나 북한의 경우처럼 시장경제에 대한 편입 없는 ‘퍼주기 식 개발원조’는 자립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저자는 “국가자본주의가 위기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적 의사결정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오직 자유시장만이 지속가능한 경제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두 책은 한국에 대해 자유시장과 국가자본주의를 섞은 ‘하이브리드형’ 국가, 또는 잠재적인 ‘그림자시장’ 국가의 일원으로 보고 있어 흥미를 끈다. ‘국가자본주의’든 ‘그림자시장’이든 위기에 빠진 서구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아시아, 중동 부국들의 질주는 공포로 다가오는 셈이다. ‘그림자시장’의 저자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에 대해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이들에게는) 위험과 함께 기회도 생겨났다”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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