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쑥쑥!… 열려라, 책세상!]시골 소년의 슬픈 하늘 도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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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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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얼굴 그리기/길도형 글·강화경 그림/72쪽·1만 원·장수하늘소

선생님에게 항상 야단을 맞던 광수는 자신이 운동장 바닥에 그린 그림처럼 예쁜 선생님이 자신에게도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장수하늘소 제공
선생님에게 항상 야단을 맞던 광수는 자신이 운동장 바닥에 그린 그림처럼 예쁜 선생님이 자신에게도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장수하늘소 제공
순수에 대한 동경, 그런 것이 마음속에서 일 때가 있다. 그게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로 지어졌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 광수는 그 순수로 어른도 울린다.

시골 소년 광수는 공책도 없이 물려받은 낡은 교과서와 몽당연필 한 자루만 가지고 학교에 왔다. 그런 광수가 미술시간이면 크레파스 같은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을 서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미술시간이면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서 벌을 서는 게 습관이 돼 버린 광수. 뙤약볕이 뜨거웠던 여름날, 선생님이 벌을 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광수는 습관처럼 운동장으로 나갔다. 도화지 대신 하늘에 대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왔던 광수는 결국 그날 햇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놀라서 맨발로 뛰쳐나간 선생님이 땀으로 흠뻑 젖은 광수를 일으켜 세우자 조용히만 지냈던 광수가 처음으로 선생님께 말을 했다. “서…서…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도망쳤다. 광수가 사라진 자리에는 선생님의 화난 얼굴, 찌푸린 얼굴과 함께 화관을 쓴 채 천사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 얼굴이 솜씨 좋게 그려져 있었다. 그길로 사라진 광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두메산골 광수 집에서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까지 광수 부모님을 기다려 들을 수 있었던 말은 광수가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광수가 매번 미술시간에 벌을 섰지만 그림 솜씨가 좋았던 이유도 그때서야 알았다. 광수는 시각장애인인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해 청각장애인인 어머니께 보여드렸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광수야 미안해.”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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