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기 “쉽지 않은 베토벤 ‘함머클라비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7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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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
프랑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의 절대자이며, 베토벤에게도 궁극의 소나타입니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50)에게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는 그가 연주하는 동기이고 목적이며 알파와 오메가다. 그가 21년 전 처음 음반으로 발매한 베토벤 소나타도 이 곡이었다.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있는 그가 3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 ‘최애곡(最愛曲)’을 선보인다. 늦봄의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2017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금호아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을 열어온 그는 지난해 본보 인터뷰에서 ‘베토벤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특히 ‘함머클라비어’에 천착해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머클라비어는 고전 피아노 소나타의 정점을 이룬 곡이죠. 45분이나 되는 장대한 작품이고, 피아노 솔로곡의 규모를 변화시켰습니다. 이후에도 베토벤은 피아노소나타 3곡을 썼지만, 그 곡들은 클래식 소나타 이후의 다른 세계로 넘어간 곡들입니다. 이후에 이 곡과 비교할만한 규모의 곡은 리스트의 소나타와 피에르 불레즈의 소나타 2번 정도입니다. 불레즈도 ‘함머클라비어’를 모델로 2번 소나타를 썼죠.”

―장대한 만큼 연주도 쉽지 않을 텐데요.

“모든 것이 이전을 뛰어넘습니다. 더 크고 복잡하고 더 기교적으로 새롭습니다. 느린 악장은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며, 짧은 연결구를 지나 마지막 악장 푸가로 넘어가죠. 우주 탄생의 ‘빅뱅’에 비유할 만한 부분입니다. 이 푸가는 ‘바흐를 넘어선 극단’과도 같고, 내면의 광기랄까, 번득임까지 드러냅니다.”

―그렇게 힘든 곡을 사랑하는 건가요.

“시즌마다 연주합니다. 내게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책’과 같은 친근한 작품이죠.(웃음) 백 번 이상 쳤고 세 번 음반으로 내놓았습니다.”

―프랑스인으로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은 어떤 느낌입니까.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스승 레온 플라이셔는 대(大)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이고, 슈나벨은 테오도르 레셰티츠키, 그 위로는 리스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였습니다. 이런 위대한 전통에 연결돼있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워싱턴, 파리, 리우, 몬테카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등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펼치고 있는 그는 내년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고 솔로도 겸해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곡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특히 1번부터 4번까지의 곡들은 베토벤 자신이 지휘도 하고 솔로도 하며 연주할 의도로 만든 곡들이죠. 이 곡들을 지휘하며 연주하는 것은 그 의도에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원들 쪽을 보며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니 마치 한 가족 같은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지휘는 팔을 들며 업비트(up beat)로 휘저어야 하고, 피아노는 건반을 내려찍어야 하니 그 둘을 함께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때 지휘자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포기하려 생각한 때도 있었다.

“90년대에 내면에서 지휘를 향한 욕구가 강하게 일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브루크너, 말러, 바그너의 대규모 오케스트라 곡들이었죠. 피아노 음악을 주로 쓴 작곡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스승인 레온 플라이셔 선생님이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에게 배울 수 있는 추천서를 써줬죠. 그런데 그때 라로크 당테롱 음악축제에서 피아노를 연주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망설이다가 거기로 갔습니다. 내면적으로 매우 중요하고도 오묘한 시기였고, 그때 페스티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이제 진짜 피아니스트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악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실내악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첼리스트 그자비에 필립과 함께 연주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음반은 그라머폰 매거진 ‘이달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바이올리니스트 테디 파파브라미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도 찬사를 받았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음반은 ‘지그잭’ 레이블로 2013년 발매됐다.

“피아니스트의 딜레마는 건반에 해머(양털을 다진, 현을 치는 나무망치)가 달린 악기를 쓴다는 거죠. (타악기적인 속성이 크다는 뜻) 그래서, 현을 긋는 악기나 가수들과 함께 연주할 때 다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가 특히 사랑하는 악기는 그윽하고 웅숭깊은 첼로와 비올라다. 내년에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노투르노’를 연주하면서 베토벤이 첼로나 비올라를 위해 쓴 곡은 모두 섭렵하는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30일 연주에 앞서 2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베토벤소나타 16, 18, 24, 26번을 연주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올해 4월로 역할을 끝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했다. “지난해까지도 좋았지만 올해는 더 환상적이에요. 홀의 음향이 훌륭하죠. 뿐만 아니라 대학 캠퍼스에서 연주한다는 느낌도 너무 좋아요. 배움이 이뤄지는 곳에서 베토벤을 소개하는 것은 훌륭한 체험이죠.”

그는 연세대 음악동우회 회원들이 표를 예매해서 연주회에 함께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연주회에 온 젊은 학생들의 눈에 하트가 어리는 걸 보았어요. 그런 것은 이 세상의 고귀함을 느끼는 체험이죠. 매우 열정적이고, 음악을 잘 받아들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청중을 경험했습니다.”

30일 연주회에서 그는 ‘함머클라비어’외에 베토벤의 소나타 19, 20, 11번을 연주한다. 그가 서울에서 펼쳐온 베토벤 소나타 대장정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내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두 차례의 연주로 끝을 맺는다.

5만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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