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르네상스-종교개혁… 거대한 물결 뒤엔 ‘네트워크’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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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타워/니얼 퍼거슨 지음·홍기빈 옮김/860쪽·4만5000원·21세기북스

참 대단한 양반이다.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쉼 없이 굵직한 책을 펴낸다. ‘금융의 지배’ ‘로스차일드’ 등 무게도, 내용도 묵직하다 못해 버거울 정도. 솔직히 너무 두꺼워 주저할 때도 있지만, 결국 읽어 보면 감탄한다.

‘광장과 타워(The Square And The Tower)’도 실망스럽지 않다. 일단 제목이 근사하다. 책의 주제를 멋들어지게 담았다. 서양에서 중세나 근대에 조성한 스퀘어와 주변 타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높다란 탑이 수직적 위계조직을 상징한다면, 널찍한 광장은 수평적인 관계인 ‘네트워크’를 뜻한다. 즉, 인류는 왕국이나 제국과 같은 계층 구조와 이를 거스르는 연결망 조직의 움직임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간 역사는 권력 중심으로 쓰이고 설명돼 왔기에 저자는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이를 들여다보려 한다.

사실 네트워크란 용어는 20세기 무렵부터 흔히 쓰여, 이전 역사에서 그다지 중요하단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조직부터 현재의 페이스북이나 구글까지 역사의 주요한 대목에선 네트워크가 강한 힘을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4차 산업혁명 등의 거대한 물결도 네트워크가 작용했다고 본다. 다만 네트워크가 언제나 순기능만 가진 건 아니었다. 질병의 확산이나 종교적 갈등처럼 “의도하진 않았지만 가끔은 끔직한 재앙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역사에서 더욱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광장과 타워’는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경제사학이 전공이지만 다양한 분야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도 논거의 핵심을 잃지 않는다. ‘통섭’을 이렇게 체화해 내는 학자는 정말 드물다. 다만 다소 장황한 대목도 없지 않다. 이 책의 1부 서론은 굳이 이렇게 길게 써야 했을까 싶다. 호불호를 떠나서 유발 하라리의 ‘정신없이 몰아치는’ 흡입력이 아쉽다고나 할까. 비싸고 맛있는 특급 요리라서 허겁지겁 먹지 말란 깊은 뜻이 있을 거라 혼자 납득해 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광장과 타워#니얼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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