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영광 시인 “내 안의 목소리가 곧 주인… 작가는 대행자에 불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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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끝없는 사람’ 펴낸 이영광

다섯 번째 시집 ‘끝없는 사람’에서 인간과 사회의 몸, 늙음, 병, 고통을 시로 쓴 이영광 시인은 “시인은 작고 시는 크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다섯 번째 시집 ‘끝없는 사람’에서 인간과 사회의 몸, 늙음, 병, 고통을 시로 쓴 이영광 시인은 “시인은 작고 시는 크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제 속에는 제 통제를 받지 않는 다양한 말들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그 목소리의 임자가 아니라 대행자라는 것, 이 말들의 물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데 긴 세월이 걸렸지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영광 시인(53)은 “예전엔 내 목소리의 확고한 주인이고자 했는데, 이젠 목소리가 바로 나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1998년 등단한 이래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등 다수 시집을 출간했다.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시인은 다섯 번째 시집인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8000원)에선 몸을 주제로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늙음, 병, 통증, 죽음은 문학의 영원한 테마지요. 백세 시대에 제 나이를 두고 늙었다 하면 엄살이고 과장일 텐데, 이 부분에는 제가 좀 예민한 것 같습니다. 여기엔 통상적인 것에서 벗어나거나 그걸 넘어선다는 느낌이 들어있는데, 작가는 존재하는 것을 더 역력히 드러내기 위해 약자의 목소리로 말하거나 더 세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인의 시는 비교적 명확하단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는 “시가 어려우니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라며 “세상에는 어렵게 말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는 의외의 말을 했다.

“시의 불가피한 모호성과 불가피한 명확성이 다 중요하다고 봐요. 불가피한 말들은 결코 난해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나오는 말은 정직하므로 진실에 가까울 때가 많겠지요. 아픈 사람은 앓습니다. 그런데 신음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요. 하지만 신음만큼 인간의 고통을 잘 전해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시집엔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한 ‘박근혜 만세’나 세월호 참사, 서울역 노숙자 등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시도 적지 않다. 그는 “일부러 쓰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 그 사건들의 방문을 받는다”며 “그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말이 되길 강하게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고통’에 진실되게 반응하는 지점, 즉 더 근본적인 층위를 찾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민과 측은지심 너머에 그런 곳이 있지 않을까 해요. 무얼 쓰든 필요한 건 이 궁극에 대한 감각인데, 그럴 때 오히려 시는 더 첨예하게 정치적일 수 있겠지요.”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이영광#끝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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