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내몸 감싸고 즐거움은 가슴속 가득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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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2018년 ‘책의 해’-도서관 즐기기

지혜의숲
“나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이란 단어를 들으면 정원을 생각할 테고, 어떤 사람은 대궐을 생각하겠지만요. 그런데 그곳에 바로 내가 있었습니다.”(‘말하는 보르헤스’에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이렇게 고백했다.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로부터 풍겨 나오는 서향(書香),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낯선 세상 이야기…. 천국은 현세의 돈과 명예가 무의미한 곳일 터이니, 정신을 풍부하게 하는 독서가 어느 것보다 기쁜 일이리라. 더욱이 선선한 실내 도서관은 여름 초입의 본격적인 더위를 막아주는 ‘실드’로도 맞춤하다.

마침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책의 해’이다. 책 관련 행사도, 도서관 프로그램도, 책에 대한 안팎의 관심도 다채롭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다가 주변 산책길을 걸어보는 것도, 가까운 명소를 즐겨보는 것도 추천할 만한 나들이 프로젝트다. 이번 주말, ‘천국’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볼거리를 품은 도서관들을 소개한다. 낮 더위를 피해 오전, 혹은 늦은 오후에 책 한 권 읽고 주변을 걷다 보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한옥도서관, 숲속도서관…도심 속 힐링공간

청운문학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인왕산 자락 숲속 길을 걷다 보면 고즈넉한 한옥 지붕이 보인다. 가마에 구워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수제 기와다. 한옥을 두른 낮은 담장에도 기와가 얹혀 있다.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 기와 3000여 장을 재사용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36길 ‘청운문학도서관’의 외양이다. 청운시민아파트가 노후로 철거되고 청운공원이 생긴 뒤, 방치돼 있던 공원관리시설을 없애고 지은 도서관이다. 한옥으로 지어진 공공도서관이어서 건물 자체가 주목을 많이 받은 곳이다. 입구엔 신발을 놓아두는 댓돌이 있고, 내부의 방 세 곳엔 낮은 책상이 여럿 놓여 있다. 책을 가져와서 책상다리를 하고 읽을 수 있다. 때론 독서모임이나 작가 특강, 창작교실로도 쓰인다. 한옥 아래층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서가를 갖췄다.

이곳 주변은 ‘문학둘레길’로 유명하다. 인사동에서 ‘이상의집’(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 살았던 집터), 윤동주문학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청운문학도서관이 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 손잡고 함께 둘레길을 걷다 들른 연인들로 붐빈다. 최근 한 달 새 주말 평균 방문객은 1300명을 훌쩍 넘는다. 인왕산의 ‘핫플레이스’가 된 셈이다.

숲속도서관
숲속도서관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숲속도서관’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종종 언급되는 장소다. 삼청공원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외관이 납작하고 아담하다. 규모가 큰 도서관은 아니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있어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숲속도서관이 지어진 사연도 흥미롭다. 이 도서관은 공원 내 매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늘 방문객들로 붐비는 삼청동이었지만 사람들이 공원 안쪽의 매점까지 찾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결국 주인은 가게를 비웠고 오랜 세월 방치된 건물은 흉가로 변해갔다. 고심 끝에 5년 전 매점 건물을 헐고 세워진 도서관은 종로구와 종로문화재단을 대리해서 동네 주민들로 이뤄진 북촌인심협동조합에서 최소 경비만 받고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자녀를 둔 어머니들로, 도서관 운영뿐 아니라 ‘숲속 독서토론 캠프’, ‘자연관찰 그림 그리기’ 등 생태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이고 있다. 삼청공원 안에 자리한 도서관이어서, 책을 읽고 나와선 인근 삼청동 카페거리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도서관마을
도서관마을
서울 은평구 연서로의 ‘도서관마을’은 공간을 둘러보면 이름의 연유가 헤아려진다. 다세대주택 3채를 리모델링해서 지은 도서관이어서다. 커튼월 공법(건물 외벽을 유리나 금속 등으로 시공)으로 여러 채의 주택을 둘러싸고, 이것을 아연판 마감으로 덧대어서 지었다. 도서관은 다세대주택들과 함께 집과 집 사이의 골목길도 품었다. 그래서 도서관 이곳저곳을 거니는 것은, 말 그대로 옛 골목길 체험이 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보이는 벽돌 건물 역시 ‘진짜 다세대주택’이다. 도서관 내 55개의 방도 다세대주택의 공간을 그대로 활용했다.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을, 작은 창이 달린 방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낯설고도 신기하다. ‘도서관마을’이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인근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야외공원 ‘피아노숲’에선 다양한 건축물을 만날 수 있어 함께 들러볼 만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독서-산책-맛집’ 코스

돌마리도서관
돌마리도서관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37길의 돌마리도서관에선 최근 초등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배우는 놀이사회’, ‘쉽고 재미있는 지리’, ‘이야기 우리 역사’, 자원봉사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맡은 ‘언니오빠가 읽어주는 영어동화’ 등의 강의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활용하기에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268m² 규모의 아담한 도서관이지만 위층을 다락방으로 꾸며놔 공간 활용의 짜임새가 돋보인다.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소리 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숲’도 개성 있는 장소다.

도보 10분 거리엔 ‘핫플레이스’로 꼽혀온 ‘송리단길’이 있다. 석촌호수 동쪽의 백제고분로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일본 가정식 식당 ‘만푸쿠’와 ‘미자식당’, 빵집 ‘라라브레드’ 등은 인스타그램의 태그 상위권에 올라 있다. 주택가 곳곳에 맛집과 카페가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게 송리단길의 특징. 도서관에서 책 한 권 빌린 뒤 골목길을 산책하다 끌리는 맛집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최근 개관 1주년을 맞은 강남구 영동대로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도서관’은 그간 20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강남의 랜드마크가 됐다. 코엑스몰의 중심인 센트럴플라자에 있는 이 도서관은 13m 높이의 대형 서가와 600여 종의 최신 잡지 코너 등으로 개관 초부터 화제가 됐다. 별마당도서관이 들어선 뒤 코엑스 상권이 살아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고, SNS에선 ‘도서관 찍고 코엑스몰 쇼핑’ 코스가 인기다.

경기 파주 ‘지혜의숲’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인 이곳의 입구에 들어서면 8m 높이의 서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학자들과 연구소가 기증한 도서가 있는 공간인 ‘지혜의숲1’에선 책과 함께한 지식인의 삶을 헤아려볼 수 있다. 출판사가 기증한 책들이 있는 ‘지혜의숲2’는 출판사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혜의숲3’에는 박물관, 미술관이 기증한 책들이 모여 있다. 젊은이들에겐 골동품처럼 느껴질 타자기도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인근엔 세계 각국 3000여 점의 피노키오 공예품들이 갖춰진 박물관 ‘피노지움’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당일치기 여행으로 추천할 만하다.

문화시설과 연계된 도서관도 눈길을 끈다. 서울 중구 충무로2가의 ‘씨네라이브러리’는 말 그대로 영화 관련 도서관. 영화이론서, 영화잡지 등 영화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시집, 영화의 원작 소설 등도 다양하게 갖췄다. 정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책상과 의자도 스크린을 향해 있어서 영화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을 읽다 보면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마음에 인근 영화관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블루스퀘어는 뮤지컬 공연장이다. 4층 건물 중 2층과 3층에 ‘블루스퀘어 북파크’가 있다. 신간을 갖추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점이면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구비한 도서관이기도 하다. 다락 형태의 작은 공간엔 2인 책상, 1인 소파 등이 있어 숨은 듯 독서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뮤지컬 공연을 보고, 이태원 거리를 걸으면서 맛집을 찾아 식사를 즐기는 주말 계획을 짜보는 것도 좋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책의 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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