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번역 전문가들이 찾는 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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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복 고전번역원 자문위원
한문 배우면 비웃음당하던 시절… 중재 김황 문하서 10년동안 공부
“윤리교육, 고전서 실마리 찾아야”

노상복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 자문위원은 ‘80대 현역’으로 지금도 매주 나흘씩 나와 일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비봉길 고전번역원 내 서가에 선 노 위원.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노상복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 자문위원은 ‘80대 현역’으로 지금도 매주 나흘씩 나와 일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비봉길 고전번역원 내 서가에 선 노 위원.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년만 하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벌써 8년째네요. 여든 살이 넘으면 미래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할 뿐이지요.”

족보나 편지, 책, 편액, 병풍 등에 쓰인 한문의 뜻을 물어오면 풀이해주는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가 햇수로 10년째를 맞았다. 이 서비스는 2008년 시작돼 올 4월까지 이용건수가 1만3300건을 넘었다. 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에 한문을 수십 년 공부한 전문가가 있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한문의 뜻을 풀이해주지만 그 역시 막힐 때가 있다. ‘모른다’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럴 때 찾는 이가 고전 번역의 ‘달인’ 노상복 고전정보센터 자문위원(80)이다. ‘전문가들의 전문가’인 그를 최근 고전번역원에서 만났다.

“사서삼경을 오전에 배우면 밤 12시까지 100번을 읽어요. 반드시 100번을 읽고 다음 부분을 배웁니다. 그렇게 7서(書)를 배우고 난 뒤 재독을 합니다. 또 100번을 읽는 것이지요. 그리고 춘추 좌전 예기로 넘어가는데 역시 적어도 100번을 읽습니다.”

노 위원은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 문하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김황은 500만 자에 이르는 문집을 남긴 ‘마지막 유학자’로 스승인 면우(면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과 함께 파리장서사건(유림이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한 사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노 위원은 “중재 선생님이 계시던 신고당(信古堂)에서 1961년경부터 10년 동안 한문을 배웠는데, 당시만 해도 한문 공부한다고 하면 ‘소배(笑背·비웃음과 따돌림)’당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은 이후 한동안 사업을 하다가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거쳐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문을 가르치며 승정원일기 번역을 교감(校勘·비교해 바로잡음)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한문교육기관인 청계서당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고전번역원에서 심하게 흘려 쓴 초서나 이체자(異體字) 해독을 돕는다. 일반인들을 위한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고전을 번역하는 번역위원들도 그에게 자문한다.

노 위원은 “팽배한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무너지는 윤리를 바로 세울 실마리는 고전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시 ‘신고당을 회상한다(回想信古堂)’를 들려줬다.

“왕년 신고당에서(回憶往年信古堂)/언제나 밤중까지 글 읽던 시절 생각난다(讀經勉勉夜常央)/화려한 문장으로 영달을 이루려는 마음은 없었고(藻-成達無心羨)/…/여러 제자들 훈도하는 스승님은 위대하셨다(賢愚甄導傳師皇)/실컷 소배당한 세월은 길었어도(剩當笑背多時月)/맛있는 샘물 지저귀는 새소리는 잊을 수 없어라(泉비鳥鳴不可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노상복 고전번역원 자문위원#한문#승정원일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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