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도자기? 너 정체가 뭐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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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헌정 ‘The Journey’展

14일 서울 롯데갤러리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자신이 만든 대형 도자기 테이블과 콘크리트 의자에서 포즈를 취한 이헌정 도예가. 콘크리트 벽에는 구멍을 뚫어 흰색 도자기 꽃을 가득 꽂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4일 서울 롯데갤러리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자신이 만든 대형 도자기 테이블과 콘크리트 의자에서 포즈를 취한 이헌정 도예가. 콘크리트 벽에는 구멍을 뚫어 흰색 도자기 꽃을 가득 꽂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갤러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높이 2m, 폭 2m로 벽에 붙어 있는 도자기 의자(월 체어)였다. 12개의 도자기 판이 타일을 이은 듯 하나의 둥그런 의자를 이뤘는데, 노랑 초록 빨강의 유약이 물감 번지듯 흘러 내려 있었다. 그 모양새가 이글거리는 태양 같기도,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같기도 했다.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갤러리 에비뉴엘 아트홀의 전시 ‘The Journey’. 8월 6일까지 이 전시를 여는 도예가 이헌정 씨(50)는 줄곧 여행(journey)이란 주제로 작업해 왔다. 도예(홍익대 석사), 조각(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건축(경원대 박사과정 수료)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여행을 통해 아트 퍼니처(예술 가구)를 만들어 온 것.

12개 도자기판을 이어 붙인 월 체어.
12개 도자기판을 이어 붙인 월 체어.
월 체어는 건축이라는 거시적 시스템과 도자기를 빚는 손의 감각이 만난, 보다 확장된 가구인 셈이다. 불쑥 튀어나온 두 개의 도자 봉우리는 모자나 옷을 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들이 매달려 놀 수도 있는 형태였다.

“제가 만드는 가구가 애매하게 이해됐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아니라 사용자가 쓰임을 결정하는 거죠. 키 낮은 도자기 의자를 누군가는 작은 티 테이블로도 쓸 수 있으니까요.”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먼저 알아봤다. 배우 브래드 피트, 건축가 노먼 포스터, 화가 제임스 터렐 등 유명 예술인들이 구입했다. 전통 소재인 도자와 콘크리트 등의 현대적 재료를 간결한 선으로 결합시킨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화려해졌다. 사람 키 높이의 대형 도자기 화분엔 빨강 꽃 장식이 가득 붙어 있다. 콘크리트 벽에 수백 개의 구멍을 뚫은 뒤 작은 흰색 도자기 꽃을 꽂은 ‘아트 벽’도 있다. “나이 들어 그런가, 꽃과 나비처럼 순수한 것들이 좋아져요(웃음). 사람들이 도예를 어렵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손의 노동, 가마 속에서 유약이 불을 만나 빚는 우연의 흔적을 전하고 싶어요.”

그는 자주 여행한다. 지난해 여름엔 옛 스승이 은퇴해 사는 아일랜드 시골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냈다. 특히 그곳의 자연에 푹 빠졌다. “두께가 10cm나 되는 이끼를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껍게 제 작품 속에 쌓고 싶어지더라고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배우들의 몸짓을 보며 ‘좀 더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는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 다산 성곽길 모퉁이에 ‘바다디자인 아틀리에 캠프B’라는 공간을 열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의 아트 퍼니처를 놓은 뒤 시인과 건축가 등을 연사로 초대해 소규모 학습모임을 열고 있다. 창작 여행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왜 캠프B냐고요? 여행에서 따왔어요. 경기 양평에 있는 제 작업실이 캠프A, 이곳이 캠프B예요. 앞으로 또 다른 캠프C와 캠프D로 계속 여행을 떠나려고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헌정#the journey#월 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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