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산업혁명이 낳은 출퇴근, 인류의 삶을 바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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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박중서 옮김/442쪽·1만9800원·책세상

19세기 철도 개설 이후 본격적인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출퇴근은 초기에 중산층 위주로 이뤄졌지만 점차 노동자 계층으로 확대됐다. 사진은 파리의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1864년에 그린 ‘3등 객차’. 피곤에 찌든 사내아이, 잠든 아기를 안은 여인,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뒤편 승객 등 19세기 중반 유럽 서민들의 출퇴근 열차 안 풍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책세상 제공
19세기 철도 개설 이후 본격적인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출퇴근은 초기에 중산층 위주로 이뤄졌지만 점차 노동자 계층으로 확대됐다. 사진은 파리의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1864년에 그린 ‘3등 객차’. 피곤에 찌든 사내아이, 잠든 아기를 안은 여인,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뒤편 승객 등 19세기 중반 유럽 서민들의 출퇴근 열차 안 풍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책세상 제공
 기자가 되기 전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 걸리는 회사를 출퇴근한 적이 있다. 마을버스로 시작해 지하철을 거쳐 시외버스를 갈아타면서 책이며 주요 신문들을 읽을 수 있어 교양에는 살짝 도움이 됐다. 그러나 만원 지하철과 시외버스에서 사람들에게 부대낄 땐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가 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출퇴근은 내게 먹고 살기 위해 견뎌야 할 생활고 비슷한 게 돼 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통근은 단순한 기회비용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함의가 깊이 깔린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출퇴근의 연혁 등을 정리한 가벼운 읽을거리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법학을 전공한 직장인이 쓴 책답지 않게 미시생활사 관점에서 출퇴근의 연원을 깊이 있게 파헤쳤다. 저자에 따르면 출퇴근은 직장과 주거지를 공간적, 심리적으로 분리하는 행위로 산업혁명이 촉발한 근대화의 산물이다. 농경으로 먹고 살던 전근대 사람들은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퇴근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극심한 도심 공해는 중산층의 교외 이주를 부추겼고, 특히 1830년 시작된 영국의 철도 건설은 짧은 시간에 도심 직장으로 출근을 가능케 했다.

 이 과정에서 출퇴근은 표준시간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전위병 역할을 했다. 기차의 부정확한 정차시간은 지각출근에 그치지 않고 열차 충돌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까지 다른 시간대에 교회종이 각각 울리던 영국 마을들은 기차시간표의 기준이 된 그리니치 표준시를 일제히 채택하기에 이른다.

 출퇴근의 등장은 사람들의 주거패턴과 문화까지 확 바꿔놓았다. 이른바 ‘직주 근접’에 따라 기차역 주변으로 중산층과 서민층의 주거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영국의 부동산 시장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미 1838년 런던-사우스웨스턴 철도회사가 새로 지은 철도역 근처에 ‘킹스턴어폰레일웨이(Kingston upon railway)’라는 신흥도시가 생길 정도였다. 문화면에서는 역사 내 매점이 영국의 로맨스, 모험소설의 인기를 촉발시키고 문맹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재밌는 건 통근의 달콤한 혜택이 역사적으로 계급 차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수익 올리기에 급급한 영국의 초기 철도회사들이 기차비를 높게 책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통근은 그림의 떡이었다. 1844년 영국 의회가 노동자 전용열차 운행을 의무화했지만, 철도회사들은 전용열차의 운행횟수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이에 따라 영국 노동자들은 1854∼1866년 런던의 콜레라 대유행과 1858년 대악취(great stink) 사건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도심 주거지에 한동안 머물 수밖에 없었다.

 서민들의 통근은 런던 지방의회의 교통 공영화 조치로 가능해졌다. 공공운송을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면서 1895년 전차 운영업체에 대한 인수와 1896년 노스 메트로폴리탄 철도회사 인수 등이 잇달아 이뤄졌다. 공영화에 따른 교통비 인하를 계기로 통근은 모든 계층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교외의 한적한 주거지에 노동자들의 주택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거추장스러운 비용으로만 치부하는 현대인들이 다시 한번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대중교통#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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