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단청 되살리려… 전통안료 ‘석간주’ 찾아 울릉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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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硏 시료채취 현장 동행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지난달 29일 울릉도 해안 토굴 ‘황토구미’에서 빨간색 천연안료인 석간주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채취된 석간주는 단청에 주로 쓰였다. 작은 사진은 2012년 인공 안료로 복원한 숭례문 단청. 하지만 얼마 뒤 안료가 벗겨지며 부실 논란이 일었고 전통 천연 안료로 복원하기로 결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지난달 29일 울릉도 해안 토굴 ‘황토구미’에서 빨간색 천연안료인 석간주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채취된 석간주는 단청에 주로 쓰였다. 작은 사진은 2012년 인공 안료로 복원한 숭례문 단청. 하지만 얼마 뒤 안료가 벗겨지며 부실 논란이 일었고 전통 천연 안료로 복원하기로 결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 지난달 29일 강릉항을 출발해 3시간 동안 뱃멀미를 앓으며 울릉도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차로 30분을 달리자 바닷가에 연접한 토굴 ‘황토구미’가 보였다. 너비 40m, 높이 5.2m인 이 토굴은 신기하게도 오른쪽 퇴적층이 영롱한 적황색을 띠고 있었다. 이 고운 빛깔의 퇴적층을 갈면 단청에 필요한 ‘석간주(石間朱·빨간색 천연안료)’가 된다. 조선시대 울릉도 석간주는 정기적으로 진상될 정도로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다. 숙종실록 임오년(1702년) 기록에 ‘삼척 영장 이준명이 울릉도에서 자단향(紫檀香)과 청죽(靑竹), 석간주를 조정에 바쳤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네 명이 울릉도를 찾은 것도 숭례문 단청 복구에 들어갈 석간주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토구미는 심한 풍화작용으로 낙석이 수시로 떨어져 입구를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연구원들은 철조망을 힘겹게 넘어 헬멧 등 보호 장구를 갖춰 입었다.

이들은 황토구미 곳곳을 레이저 계측장비로 잰 뒤 표준색상표를 꺼내놓고 석간주의 색깔과 자세히 비교했다. 이어 ‘X선 형광분석기(XRF)’로 철분과 구리 등 암석의 종류와 비율을 측정했다. 연구소로 가져갈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바위 표면을 메스로 살살 긁어냈다. 현장을 지휘한 한민수 학예연구사는 “각 퇴적층마다 석간주의 색상이 다르기 때문에 샘플을 10개 정도 채취해 실험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남은 건 반나절 이상 걸리는 ‘주상도’ 그리기. 각 퇴적층의 단면을 종이에 일일이 그려 넣는 지난한 작업이다. 석간주가 들어간 퇴적층의 폭과 입자 크기 등을 자세히 표시한다. 한 학예연구사는 “석간주의 화학적 특성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퇴적층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꼼꼼히 그려야 한다. 사진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석간주가 있는 퇴적층은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쌓인 응회암으로, 5000만 년 전쯤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혜영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석간주 내 산화철 성분이 붉은 빛을 내게 한다”며 “자연이 인간에 선사한 귀중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1박 2일간 울릉도 조사를 끝낸 연구팀은 석간주 샘플을 대전 연구소로 가져와 천연안료의 표준색상을 구현하고 전통 제조법을 밝혀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에 천연안료의 명칭은 나오지만 구체적인 제조법은 적혀있지 않다. 연구소에서는 여러 천연안료를 가열해 온도에 따라 어떤 색상 변화를 일으키는지 등을 측정할 예정이다. 이장존 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전통장인과 기존 유물조사를 통해 파악한 천연안료의 표준색상에 도달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2018년까지 숭례문 단청을 화학안료가 아닌 천연안료로 복원키로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숭례문 단청이 떨어져나가는 등 부실 복원 논란이 일면서 청장과 담당 국장이 잇따라 경질되는 홍역을 겪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단청 안료로 상대적으로 값싼 화학재료만 사용하고 접착제도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전통안료 제조법이 사라졌다. 문화재연구소는 천연 안료 복원을 위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나와 있는 기록을 토대로 우선 울릉도 석간주와 경북 포항 뇌성산의 뇌록(녹색 천연안료)부터 채취했다. 연구소는 앞으로 적·청·녹·황·백·흑·금·은 등 8가지 색상을 모두 복원할 계획이다.

울릉도=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석간주#숭례문#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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