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걸]권선주 IBK 기업은행장 “마더 리더십을 추구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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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 없는 소통과 사랑으로 보듬는 리더십
국내 금융권 최초 여성 CEO 권선주 IBK 기업은행장

사진제공 IBK 기업은행
사진제공 IBK 기업은행

《지난해 말 ‘국내 첫 여성은행장’으로 취임해 화제를 모은 권선주 IBK 기업은행장(57). 올해 2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발표한 ‘2014 역량 있는 여성 경제인 50인’에도 뽑혀 눈길을 모았다. 취임 후 ‘외유내강형 리더’라는 평을 받는 그는 1978년 말단 은행원으로 입사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 올 상반기 깜짝 놀랄 만한 실적을 내놓으며 ‘2016년 글로벌 100대 은행 진입’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아담한 체구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 조용한 말투…, 올해 초 권선주 행장을 만난 한 기자는 그의 첫인상에 대해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했다. 남성 문화가 강하다고 알려진 금융권의 첫 여성 수장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스함’을 무기로 마음을 열게 하는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을지로 IBK 기업은행 본점에서 권 행장을 만난 기자의 첫 느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랜 은행원 생활 때문인지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였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 권 행장은 자신이 추구하는 리더십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했다.

“마더십(어머니 리더십)이라고 하죠. 누구나 사랑을 필요로 하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잖아요.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듯 가능한 한 많이 베푸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에게 야단을 거의 안 치신다고 하던데요.


“야단을 칠 필요가 없어요. 잘못을 하면 잘못한 사람이 더 잘 압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질책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필요하죠. 부장 시절에도 직원들과 업무 면담을 할 때는 ‘이런 공부를 더 하면 어떻겠느냐’고 함께 의논해서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정하고 중간 중간 살피는 식으로 일했어요. 외환사업부장을 맡았을 때는 업무에 필요한 공인자격증을 따도록 독려해서 전 부원이 거의 다 따기도 했죠.”

취임 후 특히 소통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던데…

“한 미국 제약회사 CEO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각 부서 업무 평가를 할 때 다른 부서가 좋은 실적을 내도록 도운 게 있는지 따져 적극적으로 평가에 반영한다는 거예요.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직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조직이 커지면 가장 큰 문제점이 조직 이기주의인데, 소통을 통해 서로 돕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소통을 위해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우선 임원 회의시간을 이용합니다. CEO가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회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회의 때 임원들이 의견을 많이 나누고 다른 파트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하죠. 또한 되도록 영업 현장에 자주 나가 ‘현장의 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직원들의 익명성이 보장된 ‘소통 엽서’라는 것도있던데요. 기업은행 본점과 전국 영업점에 배포돼 있다고요.

“네. 이 엽서들을 통해 제가 모르던 일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물론 각자의 애로사항을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합니다. 제가 해당 부서에 직접 전화해 개선을 당부하기도 하고 제도적으로 반영하도록 하고 있죠. 이런 소통 채널이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거래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고객의 소리를 듣는다. 사진제공 IBK기업은행
거래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고객의 소리를 듣는다. 사진제공 IBK기업은행

기업은행이 발표한 올 상반기 순이익이 6195억 원(지난해 동기 대비 32.4% 상승)인데요. 이 정도 실적이면 잔치 분위기를 낼 법도 한데, 하반기에도 ‘정도 경영’, ‘내실 성장’을 첫손에 꼽으셨다죠.


“최근 금융권의 사건사고는 ‘실적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기본이자 생명인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정도 경영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내실 성장’을 늘 강조해요. 예를 들어 외형적인 볼륨을 키우기 위해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인적 자원,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8월 1일 기업은행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2016년 말까지 글로벌 100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직원들의 호응이 컸다고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기 때문일 거예요.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목표는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총자산과 대출 규모, 고객 수, 수익 등에서 구체적이면서도 실천 가능한 목표를 제시했죠.”

1978년부터 지금까지 기업은행에서 근무하면서워킹맘으로 남매를 키우셨는데,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아이들이 아플 때가 힘들었죠. 91년 남편이 해외 발령이 났을 때는 따라가야 하나, 잠시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5년간 남편과 떨어져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했지만 그때 직장생활을 고집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남아 직장생활을 계속하니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로 부단히 노력하는 습관도 생겼죠.”

둘째를 출산할 때는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일요일에 낳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즘 여직원들이 엄살이 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에요. 저희 때는 산전, 산휴 기간이 짧은 편이라 그랬고요. 요즘 아이들도 그렇고, 다들 어릴 때 밖에서 많이 뛰어놀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기초체력들이 약해요. 사람에게 시스템을 맞춰야죠.”

아침에 직접 밥을 차리신다는 얘기도 있던데 집안일 할 때 노하우가 있나요.


“아침에 아주 간단한 메뉴를 만들어요. 아침에 밥을 차린다고 하면 남자 직원들은 박수를 치는데, 여직원들은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웃음). 오랜 기간 훈련이 됐으니까 주말에 집안일을 스피디하게 해서 미리 준비해 놓죠. 장을 보면 재료를 바로 냉장고에 넣지 않고 항상 30분 정도 손질을 해서 넣습니다. 고기도 사오면 한번 먹을 분량으로 나눠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어요. 이렇게 바로 조리할 수 있게 준비해두면 시간이 절약돼요.”

가정생활과 가족을 소개한다면….


“휴일에는 되도록 집안일을 빨리 해놓고 가족과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합니다. 가족과 작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대화를 많이 나누고 테이블에 앉아 토론도 즐겨 하고요(웃음). 결혼할 때부터 맞벌이를 해서 남편은 제 직장생활을 많이 이해해주는 편입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지금은 작은 회사를 차려서 일하고 있어요. 아들은 현재 군의관이고, 딸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딸이 국가공인자격증을 하나 땄어요. 남편과 제가 기분이 좋아 스마트폰으로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어 카톡에 올렸죠(웃음).”

은행에도 워킹맘이 많은데 육아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먼저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요. 육아를 혼자 도맡으려고 하지 말고 주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많이 받으라고 하고요. 하지만 육아문제는 딱히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지나면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있고 또 어려운 경우도 있거든요. 먼저 6개월 육아휴직을 내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기업은행에도 직장 어린이집이 있지요.


“올해 개원한 서울 구로동지점까지 포함해 전국에 10개의 어린이집을 두고 있습니다. 이름이 ‘IBK 참! 좋은 어린이집’인데요.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최소 인원이 모이는 대로 계속해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기업은행에서는 지난해부터 출산과 육아 등으로 퇴직한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루 4시간을 근무하는 반일제지만 정년이 보장됩니다. 보수나 복지체계는 전일제 준정규직과 같은데, 급여만 근무시간에 비례해 2분의 1 정도 받죠. 아직 초기단계라 개선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요.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퇴근 후 영업점 직원들과 함께(위). 기업은행의 사회공헌활동 ‘사랑의 밥차’. 사진제공 IBK기업은행
퇴근 후 영업점 직원들과 함께(위). 기업은행의 사회공헌활동 ‘사랑의 밥차’. 사진제공 IBK기업은행

기업은행에서 새로 시작하는 업무가 많은 것 같은데요. 가장 중점을 두는 건 뭔가요.


“최근 100세 시대에 대비한 ‘IBK 평생설계’ 브랜드를 내놓았습니다. 은퇴 브랜드이지만 사회 초년생 때부터 은퇴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는 데 착안해 거래 고객의 ‘평생 고객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금융 상품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했지요.

무엇보다 우리가 중점을 두는 것은 중소기업 지원입니다. 제가 ‘창조금융’이란 말을 즐겨 쓰는데요. 과거처럼 담보만 보고 대출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성장가능성을 예측해서 지원해주는 것이죠. 투자, 융자 등 자금 지원뿐 아니라 컨설팅 지원도 합니다. 특히 신사업 분야에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릴 계획입니다.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이고요.”

최근 기업은행에서 투자한 영화 ‘명량’이 관객 1600만 명을 돌파했죠.


“사실 문화콘텐츠 산업은 성공 예측이 어려운 ‘고위험 산업군’이라 선뜻 투자하기가 쉽지 않지만 기업은행이 먼저 투자에 나섰습니다. 2012년 국내 은행권 최초로 문화콘텐츠 사업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지난해에는 문화콘텐츠 금융부로 확대 개편했죠. 영화 ‘명량’뿐 아니라 그간 영화 ‘관상’ ‘연가시’ ‘베를린’ 등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기업은행은 올해부터 콘텐츠 기획ㆍ제작ㆍ마케팅 등 단계별 특성에 따라 금융 지원을 추진할 예정이에요.”

바로 앞에 놓인 과제가 있나요.

“올 10월 ‘포스트(Post) 차세대 시스템’ 본격 가동을 앞두고 영업점 테스트를 실시 중입니다. 2년 여간 추진해온 ‘IT시스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인데,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다양한 채널을 일원화해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IT본부뿐 아니라 관련 부서 직원들이 모두 휴일에도 나와 합심해서 일하고 있어요. 직원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의 업무와 관련된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행원으로 시작해 기업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이력이 속속들이 업무를 파악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업 현장에서 직장생활 대부분을 보낸 그는 요즘도 ‘현장속으로 2014’란 이름으로 ‘현장경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만큼 ‘영업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업점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점심 때 도시락 미팅, 티타임을 갖거나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환경이 열악한 오지의 영업점을 방문해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듣기도 하고요. 현장에서 고객과 소통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지요. 거래 중소기업을 방문해 대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입니다.”

글/계수미 전문기자 soomee@donga.com
사진/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권선주 IBK 기업은행장은▼

1956년 전북 전주 출생. 경기여고,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78년 여성 대졸 공채 1기로 중소기업은행(현 IBK 기업은행) 입행. 여성 최초 지역본부장, 부행장 등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면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왔다. 부드러운 성품으로 직원들을 감싸 안으면서도 뚝심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은행 경력 대부분을 영업 일선에서 보냈으며, 카드사업본부장, 리스크관리본부장, 소비자센터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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