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동서양의 조화로운 문화, ‘세상의 주방’서 음식으로 즐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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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싱가포르로 떠나는 맛있는 여행

차이나타운의 한 거리에 덮개지붕을 씌우고 길 한가운데 자그만 노점식당(스톨)을 들여 조성한 음식거리(Chines Food Trail). 십여 개 스톨에서는 다양한 중국요리를 즉석에서 낸다.
차이나타운의 한 거리에 덮개지붕을 씌우고 길 한가운데 자그만 노점식당(스톨)을 들여 조성한 음식거리(Chines Food Trail). 십여 개 스톨에서는 다양한 중국요리를 즉석에서 낸다.
대부분의 나라는 불리는 이름이 두세 가지뿐이다. 많아 봐야 ‘일본 닛폰 저팬’같이 세 개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다르다. 싱가푸라, 신자포(新加坡), 싱가푸르, 싱가포르로 네 개나 된다. 각각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영어 이름이다. 말레이어 이름은 원래 이 섬이 말레이시아 반도에 속하고 원주민이 말레이시아인이니 이게 본명이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했다. 영어 이름은 1819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토머스 래플 경이 상륙해 국제무역항으로 개발하며 식민지로 삼은 시절에 얻었다. 타밀어(인도 정부가 지정한 22개 계획언어 중 하나) 이름은 영국지배 당시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남부에서 이주해온 인도인 덕분에 얻었다. 중국어 국명은 19세기 무역항 개발 때부터 줄기차게 유입된 화교로부터 얻은 것. 현재 싱가포르 인구(546만 명)의 절대 다수(77%)는 중국계다.

싱가포르는 일류국가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한 국가로 치켜세우지만 싱가포르 앞에서만큼은 그 빛이 바랜다.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식민지에서 독립하고 2년 후에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도 탈퇴한다. 홀로서기를 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그야말로 신생국인데 지난 49년간 이룩한 발전은 경이적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세계은행 통계) 5만5182달러(미화·2013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무역항, 15%(2010년)의 초고속성장, 정유시설 세계 3위, 금융기반 세계 4위, 1인당 외환보유고 세계 1위….

가공할 만한 싱가포르의 경쟁력. 그건 어디서 온 걸까. 면적이라고 해야 서울보다 조금 크고 지하자원이라고는 없으며 식수마저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공수해 와야 한다. 주민은 중국 말레이 인도 인도네시아 유라시안(인도네시아인과 네덜란드인 혼혈)계로 나뉘어 화합을 이루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그 답을 나는 리콴유 초대 총리의 지도력에서 찾는다. 종교와 언어, 문화와 역사가 다른 민족을 내전 없이 화합으로 이끈 리더십이다. 그 핵심은 ‘상이함’이란 부정적 요소를 ‘다양성’이란 긍정적 요소로 바꾸고, 그걸 성장 동력으로 삼은 역발상과 통찰력이다. 그런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공급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지능형 전략기반)’야말로 싱가포르 발전의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싱가포르의 음식은 그런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 코드다. 싱가포르를 나는 ‘세상의 주방’이라 부른다. 그런 생각은 ‘뉴 아시아(New Asia)’라는 싱가포르의 과거 마케팅 슬로건과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모습의 아시아란 ‘동서양 문화의 용광로’라는 싱가포르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은 아시아의 허브(Hub)다. 동남아 동북아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북미대륙까지 연결한다.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가 싱가포르에 무역항을 건설한 목적도 이것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동서양을 오가는 무역항로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다. 그런 싱가포르에선 세상의 모든 것과 만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그걸 용광로처럼 녹여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첨단의 합금이 ‘뉴 아시아’이고 그 실체가 현재의 싱가포르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이다. 이 칵테일을 개발한 사람은 하이난 섬 출신의 화교(중국인), 그게 태어난 건 1915년 래플스 호텔의 더 롱바, 그걸 즐겨 마신 사람은 영국 사업가. 이 칵테일의 레시피도 역시 동서양의 화합이다. 서양서 가져온 진과 체리브랜디에 싱가포르에서 나는 열대과일 파인애플주스의 혼합이다. 이런 동서양의 만남은 지금도 싱가포르에서 진행형이다. 수도 없이 태어나는 새로운 퓨전 푸드가 그것이다. 싱가포르의 음식을 이런 관점에서 관찰한다면 싱가포르 여행이 좀더 즐거우리라. 왜냐면 그걸 알고 나면 음식 맛이 다르게 다가오므로.
재래시장 티옹바루 2층 호커센터의 죽 전문점. 즉석에서 요리한다. (왼쪽 사진) 인도음식행사 ‘수바이’에서 맛본 ‘커리 립 피시’. (오른쪽 사진)
재래시장 티옹바루 2층 호커센터의 죽 전문점. 즉석에서 요리한다. (왼쪽 사진) 인도음식행사 ‘수바이’에서 맛본 ‘커리 립 피시’. (오른쪽 사진)
싱가포르의 문화를 음식을 통해 즐기는 여행. 그 음식을 즐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평소 여행길에, 혹은 ‘싱가포르 푸드 페스티벌’(매년 7월)을 찾아, 아니면 작정하고 ‘세계미식가대회’(매년 3월)에 참가해 맛보는 것이다. 싱가포르 여행길에 음식기행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매끼 식사의 메뉴를 좀더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나홀로 자유여행자라면 거리나 시장의 호커센터(Hawker Center)나 쇼핑몰 백화점의 푸드코트(Food Court)가 제격이다. 호커센터는 정부의 철거정책으로 갈 곳 잃은 거리음식점을 모아 연 거리의 푸드코트. 동네마다 그리고 시장 2층의 실내외에 자리 잡고 있다. 적도 근방 열대기후의 싱가포르에선 집안에서 음식을 해먹기보다는 외식을 하는 게 일상이어서 거리음식점이 발달했다.

호커센터는 푸드코트의 원형이라고 보면 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주변에 ‘스톨(Stall)’이라고 부르는 음식부스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주인장이 음식을 진열해두고 뒤편 주방에서 즉석조리해 낸다. 메뉴는 중국식 말레이식 인도식 등 주민들이 즐겨먹는 로컬 푸드가 주종. 거기에 싱가포르 스타일 토스트와 커피를 파는 곳, 사탕수수 주스 같은 음료수 전문점, 빙수 집, 과일집이 제각각 따로 있다. 과일도 잘라서 먹을 만큼만 판다. 그래서 호커센터에선 전식부터 후식까지 두루 찾아 먹을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 싱가포르 3∼8달러(3000∼8000원) 수준. 간단히 먹으면 10달러(1만 원)에 후식까지 맛볼 수 있다.

푸드코트는 호커센터의 고급형으로 주로 쇼핑몰과 백화점 등 실내에 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냉방이 되고 유명한 로컬식당의 분점이 많다. 그래서 발품 팔지 않고 쇼핑 도중에 이름난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대표적인 호커센터는 티옹바루 시장 2층에 있다. 푸드 코트는 이온 오차드(쇼핑몰)의 ‘푸드 오페라(Food Opera)’와 비보시티 등 시내 열세 곳의 ‘푸드 리퍼블릭(Food Republic)’이 대표적.

하지만 호커센터나 푸드코트도 음식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제대로 고르고 즐길 수 있다. 그런 이해를 얻기에는 ‘싱가포르 푸드 페스티벌’(매년 7월 중순 열흘간)만 한 것이 없다. 올해는 지난달 11일부터 20일까지 열렸고 나는 이중 사흘간 몇몇 이벤트를 취재했다. 이 행사는 싱가포르의 문화코드를 넘어서 산업으로까지 발전한 다양한 민족의 로컬 푸드를 알리는 창구. 올 행사 제목은 ‘살기 위해 먹는 것, 그 이상의…’. 센토사 섬의 해변에서는 바비큐파티(8만∼10만 원)가, 차이나타운 푸드 트레일에선 다양한 중국방언의 대표지역 토속음식 맛보기가, 시내 곳곳에선 매일 푸드 트럭이 옮겨 다니며 페라나칸(중국인 남자와 말레이시아 여자가 이룬 가정) 음식을 소개하고 시식도 할 수 있는 행사가 6일간 열렸다. 또 리틀 인디아(인도인 거주지역)에선 인도에서 날아온 셰프들이 대표적인 인도음식을 즉석에서 조리해 조금씩 내는 ‘수바이(인도어로 ‘맛’)’라는 유료시식 이벤트도 있었다.

스스로를 ‘구어메(미식가)’라고 생각하거나 고급스러운 식문화를 동서양의 음식과 함께 즐겨보겠다면 ‘세계미식가대회(World Gourmet Summit)’를 찾아보길 권한다. 이 행사는 매년 3월 중순에 2주간 열리는데 참가하려면 연말이나 연시에 미리 공지하는 음식이벤트의 참가권을 구입해야 한다. 그러니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때 맞춰 가면 금상첨화다. 업무상 가야 할 경우에도 가능하면 이즈음에 맞추면 별도의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이 멋진 행사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

이 행사의 특징이라면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셰프의 음식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 더불어 와인과 위스키 등 주류도 테이스팅(Tasting·시음)과 페어링(Pairing·음식과 선별한 와인의 결합)을 통해 맛보고 공부할 수 있다. 이 행사의 진행방식은 특이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본뜬 것인데 커미셔너(피터 크닙·이 행사를 창안한 독일인 셰프 출신 사업가)가 원하는 셰프를 선정하면 싱가포르의 유명호텔은 각각 그중 한 명씩을 초빙해 자기 호텔의 셰프와 함께 음식행사를 치르도록 한다. 지명 셰프는 커미셔너가 주관하는 공식축제 음식이벤트에서도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갈라디너’와 ‘구어메 사파리’.

갈라 디너는 보통 다섯 가지 코스 요리로 구성되는데 모든 요리에 와인이 페어링으로 나오며 셰프가 음식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구어메 사파리는 세계미식가대회의 시그니처 이벤트로 네 가지 음식을 다른 식당으로 옮겨 다니며 즐기는 행사. 가끔은 싱가포르 강에서 보트를 타거나 센토사 섬에서 체어리프트와 코끼리열차로 이동하기도 한다. 다른 분위기에서, 다른 셰프의 음식을, 다른 와인과 맛보는 구어메 이벤트다.

▼Travel Info▼

◇이벤트 ▽싱가포르 푸드 페스티벌: 매년 7월 중순 열흘간 시내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www.singaporefoodfestival.com ▽세계미식가대회: 세계적인 셰프를 초청해 싱가포르 호텔과 함께 진행하는 구어메 이벤트. 내년이 19회째. 참가하려면 내년 1월 홈페이지 (www.worldgourmetsummit.com)가 공개하는 개별 이벤트를 미리 예매한다.

◇음식정보 ▽식당가 △클라크 키: 지하철(MRT) 클라크 키 역에서 5분. www.clarkequay.com.sg △보트 키: www.boatquay.com.sg △차이나타운 푸드 트레일: 650∼700명 수용. 지하철(MRT) 차이나타운 역 출구 A. www.chinatownfoodstreet.sg △티옹바루 플라자: 티옹바루 시장. 호커센터는 2층. www.tiongbahruplaza.com.sg △푸드 오페라(食代館): 이온 오차드의 지하 4층. 22개의 스톨과 4개의 미니식당이 있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푸드 리퍼블릭(大食代): 선텍시티, 비보시티(사진) 등 시내 열두 곳. http//foodrepublic.com.sg △말레이시아 푸드 트레일: 실내에 만든 말레이시아 풍 음식거리. 수요일은 쉼. 센토사 섬 유니버설할리우드(테마파크) 앞. www.rwsentosa.com ▽레스토랑 정보: Singapore's Best Restaurant란 안내책자가 시내 곳곳에 비치돼 있다. www.wheresingapore.com

싱가포르=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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