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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분장 디자이너 이동민 “중2 때의 꿈을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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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분장 디자이너 이동민 “중2 때의 꿈을 이뤘습니다”

심규선대기자 입력 2017-05-17 00:12수정 2017-05-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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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의 과거는 연극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중학 2년 때 이미 분장 디자이너의 꿈을 세웠다는 것이고, 현재는 그 꿈을 이뤄 그를 빼고는 분장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명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세속적인 의미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 여전히 같은 길을 걸으면서 한국 연극계의 한 쪽을 지탱하고 있지 않겠는가.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사실, 질문은 준비했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물어볼 작정이었다. 유명한 부모와 같은 길을 걷는 전문인들이 부모 얘기를 꺼내면 싫어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로,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내 능력은 그냥 내 능력으로 평가해 달라는 무언의 항의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인터뷰 전, 내가 준비한 아버지의 프로필을 우연히 보고는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극장에서 놀다시피 했으니 이미 영향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영향은 다른 것이다. 아버지는 연극하는 분이었다. 교수도 했는데, 교수 월급은 다 연극하는 데 썼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보니 없을 때 버티는 힘이 생겼다. 다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이 일을 하면서) 불안해서 못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 누군가가 내게 일을 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어떤 분이셨나.

“굉장히 무서웠다. 아버지의 삶은 모든 게 연극 우선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이기적인’ 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에게는 전해져 온다. ‘이기적인’ 아버지가 걸었던 프로의 길에 들어선지 30년, 자신도 ‘조용한 프라이드’를 느끼고 있음을.

‘그’는 한국 연극계에서 그를 빼놓고는 분장을 말할 수 없는 분장 디자이너 이동민(55)이다. 그의 아버지는 연출, 극작, 무대미술, 극장경영, 후학양성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고 예술원 회원이었던 1세대 연극인 이원경(李源庚·1916~2010). 5월 15일 동아일보에서 이동민을 만났다.

2002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우리나라 우투리’의 한 장면. 보통은 스펀지로 얼굴 화장을 하지만, 이동민은 이 작품에서 붓과 수성 화장품을 이용해 얼굴에 그림을 그리듯 화장을 했다. 조명의 각도에 따라서는 가면 분위기도 나왔다. 한국에서는 첫 시도였다. 그래서 메이크업 리허설을 따로 했다. 이 연극은 한국예종 연극원 원장이던 김광림 교수가 자체극단인 ‘돌곶이’를 만들어 초연한 작품이다. 아기장수 설화 중 하나인 지리산 ‘우투리’ 전설을 테마로 우리말과 소리, 장단 등을 살려 한국적 공연양식을 찾으려 했던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이 시도는 ‘우투리극단’이 이어 받았다. 우투리극단 제공

1. 분장과 시간


모르면 무식한 질문을 하게 마련이다. 분장은 언제 하나.

“공연 전날에 드레스 리허설(실제 공연과 똑같은 조건에서 하는 막바지 총연습)이나 프레스 콜(공연 홍보를 위해 기자들 앞에서 하는 시연)이 있으면 그때 의상과 함께 분장, 무대, 조명 등도 다 같이 선을 보인다. 드레스 리허설 때 사진 촬영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는 관객석에 앉아 카톡으로 무대위의 분장팀장에게 세세하게 지시를 한다. 프레스 콜은 짧게 하는 경우도 있고, 공연 때와 똑 같이 전부 다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특별한 분장이 있고, 연출이나 출연자가 요구를 한다면 메이크업 리허설을 따로 할 수도 있다. 시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분장 디자인이 나온 뒤에 하기 때문에 개막 일주일 전쯤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건 특별한 예다. 일반 관객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래서 공연 첫날이라고 생각하고, 분장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케줄이 분장에 맞춰져 있지는 않다. 연습이 우선이고, 연습 스케줄에 따라 분장 시간은 달라진다. 분장하고 연습할지, 연습하면서 분장할지, 연습 끝나고 분장할지. 첫날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게 완벽하게 올라가야 한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해왔지만, 실제 무대에서 마무리 연습을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더욱이 첫날은 모든 파트가 다 들어와 손발을 맞추는 시간이다. 그래서 분장도 거기에 맞추려 노력한다.

오전 10시부터 연습을 시작한다고 치자. 연습 전에 분장을 한다고 하면 아침부터 간다. 1시부터 분장한다면 12시 경에 가서 준비한다. 낮에 간다는 것은 연습 중간 중간에 분장을 한다는 의미다. 연습을 안 하는 배우들부터 분장을 한다. 첫날은 모두가 초조하고 민감하다. 그래서 서로 조심해가며 웃으면서, 편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분장은 보통 4시간을 잡는다. 가발, 수염 등 특수분장은 나중에 한다. 분장이 다 끝나면 나는 조명을 켜 달래서 관객석 중간에서 배우들을 본다. 그때 가발을 더 풍성하게 해야겠다든가, 얼굴 윤곽을 더 강하게 하겠다든가 마음속으로 수정을 한다. (바로 고치나.) 그럴 시간이 없다. 보통 다음날 수정한다.

공연이 끝나면 분장팀끼리 분장실에서 바로 리뷰를 한다. 공연이 끝나면 10시, 정리하면 10시 반쯤 된다. 집에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다른 데로 갈 여유가 없다. 어떤 배우는 얼굴을 더 갸름하게 하자, 어떤 여배우는 가발을 바꾸자, 누구누구는 눈썹과 수염을 어떻게 하자는 등등의 얘기를 한다. 가발이나 수염 등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은 다음날 일찍 가서 수정을 한다.

배우 15명 기준에 분장은 보통 3명이다. 머리가 중요하다면 헤어디자이너를 따로 부르기도 한다. 그 팀은 매일 공연장에 출근한다. 나도 그렇다. 하루에 2,3군데를 돌 때도 있다. 나는 연습을 많이 보는 편인데, 분장 디자인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 날 재료정리하고, 쫑파티에 참석하면 한 작품이 끝나는 것이다.” 
 
 
2. 분장 & 공간

분장실은 어디에 있나.

“극장마다 다르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과 CJ토월극장,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등은 무대 바로 옆에, 국립극장의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은 무대 뒤 옆에, 소극장들은 밑에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분장실은 1층이고 무대는 2층인데, 2층 무대 쪽에도 작은 분장실이 있다. 여기서 장면 전환에 필요한 분장을 한다. 아무래도 분장실은 무대에서 가까운 게 좋다.”

실제로 공연에 들어가면, 그의 자리는 따로 있다.

“객석 맨 뒤에 모니터석을 마련해 주는데, 나는 모니터석 중에서도 통로 쪽에 앉는다. 급하면 바로 분장실로 뛰쳐나갈 수 있게. 그 때 하는 말? ‘야,야, A배우 수염 떨어진다, 고쳐! 고쳐!”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분장과 공간을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게 극장의 크기다. 소극장(500석 이하), 중극장(500~1000석), 대극장(1000석 이상)에 따라 분장이 달라져야 한다. 대극장 쪽으로 갈수록 분장이 진해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서울시극단의 ‘함익’의 한 장면. 작가 김은성은 ‘햄릿’을 비틀어 재벌가 딸이자 교수인 ‘함익’으로 바꾸고 유령 대신에 함익의 분신(사진 오른쪽)을 만들어냈다. 이 공연은 의상이 대부분 검은 계통이고, 무대도 어두울 때가 많았다. 끊임없이 함익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분신은 무게 있는 역이었다. 자, 분신을 어떻게 돋보이게 할 것인가. 이동민은 분신의 머리칼을 하얗게 염색하기로 했다. 이지연 배우가 4번이나 탈색을 하며 고생한 끝에 마음에 드는 색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서울시극단 제공(사진 윤문성)

3. 분장 & 인간

시간과 공간보다 인간은 더 자주 바뀐다. 그래서 분장에도 인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아니다. 원래부터 분장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그런 걸 각오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연출가. 연출가는 개막 전에는 분장 디자인만 보고 오케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때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연출도 있고, 알아서 해달라는 연출도 있다. 후자가 편하지 않느냐고? 그야 그렇지만 그는 요구가 타당하든 안 하든 뭔가 요구를 하는 연출과 일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연출 중에 분장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 있나.

“작품을 많이 하는 연출가들은 그래도 분장을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연출이 적은 게 현실이다.”

공연 도중 연출이 분장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게 많나.

“당일 공연이 끝난 뒤 연출이 ’올 스태프(모든 스태프)‘를 소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 분장에 대해서도 주문을 꽤 한다. (분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면서 뭘?) 연출은 무대 전체를 보기 때문에 통일감이나 배역간의 조화 같은 것을 지적한다. 연출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느끼는 경우도 많다. 나는 괜찮은데 연출이 ’과하다‘고 할 때는 마음속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더 죽이면 촌스러운데….‘ 일단 맞춰주고, 다음날 공연보고 다시 얘기를 한다. ’안 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 ’안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러면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배우는 어떤가.

“배우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1순위가 의상, 2순위가 분장이다. 의상은 한번만 민감하고, 고치거나 하면 끝난다. 그러나 분장은 매일 매일 민감하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그렇긴 하지만 남자 중에도 예민한 배우가 있다. 배우와 분장 디자이너는 매우 밀접하다. 배우가 얘기를 안 해도 컨디션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얼굴이 건조하고 주름이 많으면 간밤에 술을 마신 거다. 얼굴에 기름기가 흘러 ’뭐 좋은 것 드셨어요‘하면 ’보신탕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 남의 얼굴만 30년을 보고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배우는 없는지.

“예전에는 많았다. 요즘에는 분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그런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 다만, 자신에게 이런 단점이 있는데 이런 분장을 하면 그게 드러날 것 같아 고민이라고 하는 배우가 있다. 그러면 나도 고민한다. 그 배우의 고민도 해결하고, 연출 의도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배우와 분장 디자이너의 의견이 끝까지 충돌한다면.

“연출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분장의 범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 밖으로 나와 있는 피부는 전부 분장의 대상이다.

관객은 분장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나.

“관심을 갖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왜 건네 들은 것처럼 말을 하나.) 사실 나는 리뷰를 안 본다. 배우나 연극인들이 와서 알려준다. 예를 들어 최진아 연출이 와서 ’조씨고아에서 정영의 처로 나온 이지현 배우의 화장이 너무 좋다고 한다‘고 말해 주는 식이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그렇게 잘 했나?‘하면서 기분이 좋기는 좋다.”

왜 리뷰를 안 보나.

“영화나 드라마는 본방을 보든 재방을 보든 똑같다. 그러나 연극은 매일 매일의 공연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도 주관적으로 글을 쓰는 경향이 많다. 안 좋은 리뷰는 다음 공연에도 영향을 준다. 다만, 공연이 끝나고 리뷰들을 종합해 봤을 때 공통된 의견이 있다면 재공연 때 고려를 해야겠지만.”

분장을 하기에 좋은 얼굴, 힘든 얼굴이 있나.

“큰 얼굴이 좋다. 커야 뭘 할 게 있다. 무대위에서 잘 보이고, 윤곽 만들기도 좋다. 코 높이? 중요하지 않다. 코는 분장으로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오밀조밀한 작은 얼굴은 확장성이 없다.”

정치판에서나 듣던 ’확장성‘이라는 말을 분장 디자이너에게 들으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그는 말한다. “얼굴 분장은 우리가 세계적 수준이다. 코 세우고, 쌍꺼풀 만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보니 그리 된 것 같다. 가발은 전통적으로 유럽이 최고이고.”

분장을 직접 할 때와 팀원들에게 시킬 때의 차이가 뭔가. 중요한 작품은 직접 하나.

“아니다. 받는 돈이 너무 적으면 남한테 시키기가 미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직접 한다. 또 절친한 연출이나 배우들이 부탁을 하면 거절하기도 어렵고, 나도 내가 직접 하는 게 좋다.”

4. 분장 & 의상 & 조명

협업(콜라보레이션)의 시대다.

“요즘은 전문 분야의 여러 디자이너들이 함께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분장과 가장 밀접한 게 의상이다. 조명하고도 그렇고. 3월에 문삼화 씨가 연출한 ’소나기 마차‘에서 어느 배우에게 핫핑크 가발을 씌웠다. 그런데 조명을 비추니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조명 디자이너에게 ’저 여배우가 중요한 대사를 할 때만이라도 핫핑크 색깔이 나오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줄곧 핫핑크 색깔이 나도록 해줬다.”

그렇다면 조명이 갑, 의상이 을, 분장이 병인 것 같다(웃음).

실제로 무대분장을 소개하는 전문서에는 조명과 의상의 관계를 꼭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극장 조명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강도도 심해졌으며 색채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배우들의 분장 역시 전문 조명기술에 맞춰 더욱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의상 역시 분장과 상호 밀접한 보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로서, 분장으로 표현이 미흡한 경우, 의상으로 보완하여 완전한 극중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의상으로 표현이 완전치 못한 것은 분장 작업을 해 줌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이상 ’성격분장‘ 정기운 등 공저, 광문각, 2011년)

이동민은 의상 디자이너와 협업을 잘 했던 작품으로 서울시극단이 지난해에 공연한 ’헨리4세 파트1&파트2-왕자와 폴스타프‘ 그리고 ’함익‘을 꼽았다.

“’헨리4세‘의 김지연, ’함익‘의 홍문기 의상 디자이너와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20년 전과 비교하면, 다른 제작진들과의 협업이 많은 변화를 주고 있죠. 이전에는 소통이 마냥 어려웠는데, 지금은 의상디자이너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배우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노련해졌어요.”(서울시극단 20년사, 2017년 3월)

사실 그의 이 발언은 긴 인터뷰의 일부분이다. 그는 서울시극단 창립 20년을 맞아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를 대표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동민은 서울시극단 창립공연인 ’아버지‘(표재순 연출)에서 분장을 맡은 이래 지난해까지 서울시극단에서만 20개의 작품에 참여했다. 서울시극단의 원년 멤버로 아직도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디자이너는 그가 유일하다. 그만큼 분장 외길을 걸으며 퍼포먼스와 프라이드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그는 상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참여한 작품이 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분장은 못 받는다. 1순위가 연출, 배우, 극작이고, 다음이 무대 조명 의상이다. 왜 분장이 뒤로 빠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섭섭했던 예로 2014년 명동예술극장이 만든 ’줄리어스 시저‘를 꼽았다. 이 작품은 그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김광보),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았다. 시청각디자인상의 수상 분야는 무대 조명 의상 안무 무술이었다. 분장은 없었다.

그는 또 2012년 백지영 분장 디자이너가 ’한꺼번에 두 주인을‘(카를로 골도니 작, 리 홀 각색, 오경택 연출)에서 종이로 가발을 만든 발상은 마땅히 상을 받았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탈리아 베니스를 무대로 한 좌충우돌 코미디인데, 그 만화적 분위기를 종이가발로 살려낸 것은 대단히 창의적인 착상이라는 것이다.

이동민 본인은 지난해 수원에서 열린 ’2016 아시아 美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스테이지 메이크업 아티스트 어워드‘를 받았다. 상은 그게 유일하다. 그가 1986년 이후 참여한 작품만 175개(오페라 TV 영화 바디페인팅 21개 포함)나 되는데 왠지 허전하다.

2016년 겨울에 공연한 국립극단의 ‘실수연발’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어필시킬 것인지를 고민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을 동물에 비유해 특징을 극대화하고 과장된 연기를 시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사진은 주인의 쌍둥이 아들과 하인의 쌍둥이 아들이 같은 날 태어난 상황. 오른쪽 하인의 쌍둥이 아들을 당나귀처럼 만들기 위해 큰 귀를 만들어 붙였다. 배우의 귀를 석고로 떠내고, 이를 틀로 삼아 폼텍스로 큰 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접착력이 좋은 분장용 양면테이프로 배우의 귀에 붙였다. 이동민은 이런 특수분장을 일본의 메이크업 칼리지 크란츠에서 배웠다. 국립극단 제공(사진 이강물)

5. 분장 디자이너의 길

분장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그 계기란 무엇인가.

아버지 이원경 씨는 1976년 삼일로창고극장을 인수해 대표가 된다. 이동민의 나이 14살, 중학교 2학년 때다. 극장이 놀이터가 됐다.

“분장을 하면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는 게 신기했다. 공연을 보면 무대 위에 일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저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갔으나 분장 전공은 없었다. 조연출도 하고 배우도 하면서, 분장에 관심을 쏟았다. 다른 대학의 연극반에 가서 분장도 해 주고.”

이번에 배운 게 하나 있다. 나는 ’분장‘의 한자를 粉裝이나 粉粧 쯤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扮裝이었다. 분(扮)과 장(裝), 둘 다 ’꾸민다‘는 뜻으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화장은 그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는 1986년 졸업하자마자 현장으로 뛰어든다. 연극, 영화, 오페라를 가리지 않았다. 1세대 분장사인 고 전예출(1927~1996) 선생 밑에서 팀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혼자서 오페라 단원 25명을 분장한 적도 있다. 1991년까지는 그러다가 약간의 공백(일본 유학)을 거친 뒤 1997년부터는 연극에만 전념한다. 왜 그런가.

“1988년도부터 영화도 꽤 많이 했다. 당시는 나이든 남자 영화배우가 분장사도 했다. 젊다고 해도 6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국영화기술협회에 등록을 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자막에서 내 이름을 빼라고 하면 뺄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당시 작은 아버지가 ’지미필름‘에 있어서 회원이 되긴 했다. 그런데 분장사가 아니라 막말로 ’따까리‘ 같았다. 디자이너로서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일본 유학을 갔다 돌아와서는 공연분장을 주로 하다가 그 중에서도 연극만 한다. 연극이 좋다. 디자이너로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장르보다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있고.”

분장도 요즘은 전문화하고 있다. 크게 무대, 영화, 드라마 분야로 나눈다. 무대 분장에는 오페라 뮤지컬 창극 어린이극 성극(聖劇) 마당놀이 이벤트 등도 들어간다.

그는 1991년부터 3년 조금 안 되게 일본대학교 예술대학 연구소 연극학과와 일본 메이크업 칼리지 크란츠에서 수학하며 가부키와 특수분장을 배웠다(2006년, 상명대 대학원도 졸업했다).

특수분장 얘기를 들어보자. ’한국분장예술‘(강대영 저, 2013년)은 특수분장으로 볼드캡(대머리), 두상 석고 몰드, 치아틀, 원시인 얼굴, 라텍스를 이용한 주름 만들기, 멍, 긁힌 상처, 자상, 화상 등의 분장법을 서술하고 있다. 응용분장으로는 삐에로 분장, 페이스페인팅, 바디페인팅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분장‘(미국의 리처드 코슨의 저서를 박수명 씨가 한국 실정에 맞게 번역 편집. 예니출판사)이라는 책은 ’상상분장‘이라는 이름으로 천사, 동물, 새, 광대, 시체, 악마와 도깨비, 땅귀신, 무생물, 삐에로, 마녀 등의 분장법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수염이나 가발, 문신 등도 특수분장이다.

분장재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전문제품과 일반 화장품을 같이 쓴다고 한다. 구미와 일본제도 있지만, 요즘은 국산도 많이 쓰고 있다. 구미제로는 크리오란, 메론, 벤 나이, 일본제로는 미쓰요시(三善)가 유명하다.

자랑할 만한 작품을 몇 개 꼽아달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떠오르지 않는단다. (그렇게 작품이 많은데….) 그래도 계속 재촉하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국립극단의 ’조씨 고아-복수의 씨앗‘을 소개했다.

“고선웅 연출이 ’명동에서 분장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해 주세요‘라고 했다. 표 나게 해달라는 뜻이다. 나는 과한 분장은 안 좋아하는 편인데, 중극장인 명동예술극장의 분장을 대극장 분장으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국극(國劇)분장을 할까요‘라고 하니 고 연출이 ’그거 좋지요‘라고 해서 국극분장을 하게 됐다. 국극분장은 과장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분장법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일본 다카라즈카 극단의 분장을 닮았다. 다카라즈카와 국극은 단원이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국극은 1950년대를 전후해 10여 년 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왕자 역할을 하는 남장 여배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지금의 아이돌 인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왕년의 유명 국극 배우인 김경애(金敬愛·햇님국극단)였다.

“1967년에 어머니 팬들이 만들어준 앨범이 있었다. 그걸 참고로 해서 ’진하게‘ 분장 디자인을 했다. 드레스 리허설 때의 반응도 ’이렇게 진하냐‘는 것이었다. (반발은 없었나.) 고선웅 팀의 연출과 배우는 팀워크가 참 좋다. 연출이 간다면 간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를 낸 적도 있을 듯한데.

“작품이 잘 안 나왔을 때 기분이 나쁘다. 잘 나오면 자랑하면서 주위에 보러오라고 권유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작품에 대한 승부욕이라고 할까, 여하튼 작품이 잘 나오도록 노력하고 있다. 화는 분장팀에게만 몇 년에 한번 내는데, 시간을 안 지켰을 때다. 분장 잘 못했다고는 화를 안 낸다. 그건 가르쳐야 하는 일이니까.”

’분장팀‘이란 1997년에 그가 만든 회사, 노리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말한다. 지금 3명이 있다. 완전 전속은 아니고, 다른 데서 요청이 오면 밖의 일도 한다. 요즘은 이런 고용 형태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살 만하냐는 질문에 그는 “먹고는 산다, 없으면 덜 쓴다”고 했다. 그는 1년에 10편 이상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으나 그 이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몰리거나 일정이 중복되기에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는 계약 관행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분장비‘라고 해도 세분하면 디자인비, 인건비, 재료비, 진행비 등등이 있다. 그런데 모든 걸 일괄 계약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돈이 되는 것 같아도, 쪼개 보면 적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전문지식도 나눠주고 있다. 상명대, 한성대, 중앙대, 단국대, 국민대 등에서 분장을 가르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은 2003년부터 14년째 출강하고 있다. 주로 연기 연출 전공이 듣는데, 학교 측은 연기 전공 학생이 적극적으로 배우길 원한다. 외국에서는 배우가 직접 자기 분장을 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앞서 소개한 ’분장‘이란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배우가 표출하려는 등장인물을 배우 자신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분장사의 기술에 의지해야만 되는 배우는 예술적인 면에서 불구자나 다름없다.”

약간 혼란스럽다. 분장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배우가 언제 그런 것까지 다 배울 수 있을까. 또 분장 디자이너의 존재는 무엇인가. 결국은 배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우가 하고, 배우가 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은 분장 디자이너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는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문제에 봉착하면 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방법이 나오면 나에게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그렇게 한다. 연출이 내 디자인과 다른 걸 요구하고, 달라진 디자인으로 무대에 올라가면 속상한다. 그런데, 내 단점인데, 어느 순간 그 문제를 놓아버린다.”

분장 디자이너로서 평소 화장이 신경이 쓰일 법도 하다. 주변에서 프로는 어떻게 하나 볼 테니까.

“나는 분장 디자이너지만 화장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얼굴 관리도 잘 안 하고.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나 인터뷰 할 때는…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화장을 하면 기분은 조금 좋아진다.”

후회는 없나.

“없다. 없는데 연출을 한번 해봤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옆에서 보니 매력이 있더라. 주위에서 한번 해보라고 권유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나이가….”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그는 중학 2년 때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그 꿈이 지금 한국 연극계의 일각을 지탱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 딸은 기자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왜 일언지하에 거절했을까. 언제 한번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 아니다. 그만 두자. 혹시 “그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까맣게 잊고 있으면 더 상처를 받을 테니.

(이동민이 참여했던 주요 연극 작품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 ’벚꽃동산‘ ’길 떠나는 가족‘ ’밤으로의 긴 여로‘ ’우리나라 우투리‘ ’크루서블‘ ’오셀로‘ ’검찰관‘ ’한여름 밤의 꿈‘ ’막판에 뜨는 사나이‘ ’그린 벤치‘ ’날 보러 와요‘ ’오레스테스‘ ’맥베드‘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다윈의 거북이‘ ’봄날‘ ’하얀 앵두‘ ’광부 화가들‘ ’벌‘ ’십이야‘ ’과부들‘ ’칼집 속에 아버지‘ ’바냐 아저씨‘ ’먼데서 오는 여자‘ ’별무리‘ ’즐거운 복희‘ ’조치원 해문이‘ ’아버지와 아들‘ ’함익‘ ’실수연발‘ ’조씨 고아-복수의 씨앗‘ ’소나기 마차‘ ’왕위 주장자들‘ ’맨 끝줄 소년‘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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