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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황두진]질문 없는 자동화된 지식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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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황두진]질문 없는 자동화된 지식을 경계한다

황두진 건축가입력 2017-05-15 03:00수정 2017-05-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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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 임태훈 홍성욱 지음 반비·2017년
황두진 건축가
영어의 ‘테크놀로지’는 통상 ‘기술’로 번역된다. 하지만 그 의미를 구체화하려면 ‘과학기술’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른 종류의 기술, 즉 ‘테크닉’이나 ‘스킬’ 등과 구별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일까. 테크놀로지라는 원어를 그대로 썼다. 그만큼 이 단어가 우리 언어생활에 아직 깊게 편입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듯하다.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대한민국이지만 아직 기술에 대한 인식은 실용적 차원을 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너머의 세계를 겨누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근대의 소산이다. 그 전에도 놀라운 성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엄격히 말하면 과학적 뒷받침이 부족한, 시행착오에 의해 형성된 경험적 기술의 결과물이었다. 과학이 실용의 목적에 적용된 결과물인 테크놀로지는 현대 기계문명과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이룬 토대가 됐다. 당연히 비평의 대상이 된다. 기능, 물성, 미학적 사회적 특성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기계의 풍경’. 황두진 씨 제공
책에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기술비평’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세 저자는 각각 기계, 디지털, 적정기술 분야 비평가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필체와 관점으로 우리 시대 기술문명의 징후를 바라본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할수록 사용자가 철저히 수동적인 처지에 놓이는 역설이 공통의 관심사다.

“애플이 서비스하는 아이클라우드의 기본 저장 용량은 5GB(기가바이트)다. 5분 길이의 MP3 파일을 1000곡 정도 올릴 수 있다.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용량이 50GB까지 확장된다. MP3 음원 1000곡을 들으려면 80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럴 시간이 현대인에게 주어져 있긴 한 걸까?”

이영준이 패스트푸드 산업의 속성을 수사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도 흥미롭다. 그 바탕에는 사실에 대한 치밀하고 냉정한 관찰이 전제돼 있다. “포테이토, 양념감자, 해시포테이토는 섭씨 172도로, 치즈스틱, 새우, 치킨은 섭씨 182도로 튀긴다”는 식이다.

“기계로 만들어지는 음식답게 롯데리아에서는 재료를 모아 햄버거 만드는 과정을 ‘조립’이라 부른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기계들은 회로를 이루고 있어 식재료가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완성품이 된다.”

이 책이 그리는 세상의 풍경, 그리고 그것을 그려낸 방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불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무하는 숫자와 통계, 외과수술 기록 같은 건조한 문장에서 의외의 온기와 미적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현대다.


“무지는 앎만큼 값진 성취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위한 적극적 질문과 사유 없이는 무지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없다. 경계해야 할 것은, 질문하지 않는 자동화된 지식이다.”
 
황두진 건축가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이영준#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기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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