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58>부산기상관측소와 용두산공원 神社의 기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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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용두산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중구 대청동 복병산 부산기상관측소. 1934년 건축.
부산 용두산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중구 대청동 복병산 부산기상관측소. 1934년 건축.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거리, 부산근대역사관(옛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을 지나 좁고 한적한 오르막길. 부산 중구 대청동, 복병산 언덕을 향해 한참을 걷다 보면 좁은 골목 끝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건물이 나타난다. 1934년 지어진 부산기상관측소다.

부산에 기상관측소가 생긴 것은 1904년. 부산을 비롯해 인천 원산 등지에서 근대적 기상관측이 처음 시작된 해다. 부산기상관측소의 원래 위치는 보수동 골목이었다. 당시 공식 명칭은 일본 중앙기상대 제1임시관측소. 일제강점기 관측소는 매일 몇 차례씩 기상 정보를 수집해 일본으로 전송했다. 러일전쟁을 앞둔 시기였기에 기상 자료는 일제의 군사작전에 사용되기도 했다. 보수동 관측소는 1934년 이곳 복병산 정상에 새 건물을 짓고 옮겨 왔다. 지금 여기선 기상관측만 이뤄진다. 업무는 다른 곳에서 본다. 그렇다 보니 관측소 건물 내부는 대부분 비어 있다.

관측소 건물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외벽이 온통 개나리색 타일로 덮여 있는 데다 건물 오른편 모퉁이 쪽이 위로 갈수록 계단식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다. 멀리서 보면 바다를 항해하는 배 모양 같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맨 위층 모퉁이 작은 방에 들어가면 대형 유리창이 눈에 들어온다. 창 너머로 용두산공원 부산타워가 한눈에 펼쳐지고 부산 앞바다가 시원하게 밀려온다. 이 작은 공간은 마치 선장실 같다. 배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 난다.

부산타워 자리엔 원래 일본 신사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일본 신사였다. 용두산공원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부산타워를 지우고 그 자리에 신사를 얹어본다. “관측소는 신사의 표정과 바다의 날씨,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포착할 수 있었다”는 어느 건축가의 설명이 이해가 간다. 그랬다. 부산 복병산의 기상관측소는 기상관측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신사를 관리하고 그곳을 드나드는 한국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까지. 생각이 이즈음에 이르자 배 모양의 선장실이 더 이상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산기상관측소는 최근 서울기상관측소와 함께 세계기상기구(WMO)가 뽑은 ‘100년 관측소’에 선정됐다. 보수동에 있던 옛 관측소 건물을 복원해 기상자료박물관으로 꾸민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복병산 관측소와 신사에 관한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내용까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국제시장#용두산공원#보수동 책방거리#부산근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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