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현대에도 사랑받는 차이콥스키의 화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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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난생 처음 기타를 산 후배는 의기양양했습니다. 동아리방에서 간단한 코드를 짚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잘 치네, 라는 제 말에 “밤새 연습했어요. 흐흐” 했습니다. C-a min-d min-G. 코드 네 개만 계속 짚으면 부를 수 있어 기타 초보자들이 사랑하는 노래였습니다.

“노래는 말고, 기타만 쳐봐.” “왜요? 제가 그렇게 못 불러요?” 같은 코드로 계속되는 반주 위에 제가 다른 노래들을 계속 붙였습니다. 떨어지는∼ 낙엽들 그 사이로….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와. 다 화음이 맞네. 신기하다!”

화음이 이어지는 ‘코드진행’ 또는 ‘화음진행’ 중에는 작곡가들도, 듣는 사람도 특별히 사랑하는 ‘친숙한’ 방식들이 있습니다. 위에 적은 코드진행도 그렇습니다. 도미솔-라도미-레파라-솔시레. 화성학 기호로는 I-ⅵ-ii-V입니다.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가 발 건반으로 치는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도 이 코드진행의 반복으로 친숙한 음악입니다.

왜 이런 화음진행이 특히 사랑을 받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봤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왔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아예 별도 항목으로 들어 있습니다. ‘20세기 대중음악에서 특히 애호 받는 화음진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가 왜 이걸 떠올렸을까요. 연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무대에 오릅니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꽃의 왈츠’가 끝나면, 조용해진 무대 위에 잔잔한 하프의 화음이 떠오릅니다. 예의 I-ⅵ-ii-V 진행입니다. 이 발레의 하이라이트인 ‘그랑 파 드 되’입니다. 눈물이 날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낭만주의 후반기에 활약한 차이콥스키의 시대에는 이 화음진행이 잘 쓰이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엔 얼마간 ‘선진적인 코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고전낭만시대의 음악을 듣는 제게 왜 이 화음이 이토록 아늑하고 편하게 느껴질까요. 20세기 대중음악의 여러 기호에 이미 친숙하기 때문일까요. 차이콥스키에게는 자신의 후대 사람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코드를 미리 내다보는 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호두까기 인형#차이콥스키#코드진행#화음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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