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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美대통령 찬가 비꼰 ‘도둑찬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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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美대통령 찬가 비꼰 ‘도둑찬가’도 있다

임희윤기자 입력 2017-11-09 03:00수정 2017-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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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맑음. 도둑 만세. #268 Radiohead ‘There There’(2003년)
라디오헤드의 2003년 앨범 ‘Hail to the Thief’ 표지.
7일 청와대 국빈만찬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은 음악은 ‘Hail to the Chief’였다. 대대로 미국 대통령의 입·퇴장에 쓰이는 곡. ‘미국 대통령 찬가’로도 번역된다.

그래서 ‘Hail to the Thief’가 떠올랐다.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2003년 앨범 제목. 밴드는 ‘Chief’(최고위자)를 ‘Thief’(도둑)로 바꿈으로써 2000년 미국 대선 부정선거 논란, 그리고 서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광기를 냉소했다.

음반에 실린 곡 ‘There Ther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컬 톰 요크는 마치 토끼 굴로 떨어진 앨리스 같다. 신비로운 숲을 방황한다. 토끼, 다람쥐, 고양이 같은 짐승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결혼식을 여는데 그 광경을 그는 걸리버처럼 멀뚱히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접어든 숲 한가운데서 찬란하게 빛나는 외투 한 벌을 발견하는 것이다.

시간도 나처럼 지쳤던 걸까. 어젯밤 퇴근길 버스는 지루한 올림픽대로를 한참이나 달렸다. 마침내 경기 서부의 외곽 도시에 다가설 무렵, 나는 경전에 나오는 황야의 예언자처럼 신기루 같은 광경을 봤다. 기나긴 회색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끝나고 저 멀리에 도열한 불빛들. 그것은 섬처럼 마중 나와 내가 또 다른 도시에 다다랐음을 알려줬다. 초콜릿처럼 네모난 아파트 병정들의 기다림.

그 순간, 왠지 먼 훗날 내가 죽을 때가 기억났다. 삶에서 튕겨 나가 붙잡은 틈.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희미한 빛의 고속도로를 유령처럼 달리다 보면 이렇게 어느덧 다른 도시에 닿게 되는 것이다. 무뚝뚝한 사각형의 아파트. 102동 1302호쯤에 들어서면 아버지가 계셨다. 언젠가 몹쓸 병이 들어 사라졌던 아버지는 거기서 그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 들어오냐”며 안방에서 걸어 나오신다. 거실의 전축을 틀었다. (‘뭔가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꼭 존재한다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마뜩잖아 하시던 록 음악을 함께 들으며 우린 재미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그렇게 밤을 훔쳐냈다.

‘우린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우연.’(‘There There’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청와대 국빈만찬#도널드 트럼프#hail to the chief#radiohead#there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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