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허깨비 같은 세상을 노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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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0일 수요일 흐림. 지금 모든 것.
#261 Arcade Fire ‘Everything Now’ (2017년)

최근 신작 ‘Everything Now’를 낸 캐나다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최근 신작 ‘Everything Now’를 낸 캐나다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우리가 그때의 모든 킬로바이트를 저장해 뒀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고양이처럼 기억을 잃고 현재의 순간을 사는 자들. 지나간 순간들은 꿈에서 본 섬의 실루엣 같다.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 전설의 바다 위에 떠 있다.

‘지금 모든 것.’

캐나다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가 최근 4년 만에 낸 신작 제목은 ‘Everything Now’. 그들은 이 구절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해서 LP레코드에 인쇄했다. 한국어로 ‘지금 모든 것’이라 쓰인 소량의 레코드는 금세 품절됐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현대사회의 공허함을 덧없는 시어로 노래해 왔다. 음악 속에서 주인공은 죽음처럼 파격적인 환상에 입장함으로써 겉만 번지르르한 세상에서 탈출하려 했다. 출구는 지난 작품 ‘Reflektor’에서 막혔다. 드디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반짝이는 은색 문을 발견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반사체였던 것이다. 그 너머로 엿본 희망의 세상은 사실 이쪽의 상이 반영된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이고.

‘Everything Now’에서 이들은 또 한 번 허깨비 같은 멋진 신세계를 노래한다. 소셜미디어의 홍수. 현재의 순간을 꽉 채우는 무한한 모든 것. 그 이면에 도사리는 균열과 결핍 같은 것들. ‘길 위의 1인치마다 도시가 있는데/아빠, 어째서 당신은 없는 거죠/당신이 보고파요, 지금 모든 것처럼.’ 보컬 윈 버틀러의 목소리는 데이비드 보위(1947∼2016)처럼 흔들린다.

우는 건지 비웃는 건지, 간절한 것인지 공허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 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Reflektor’에서 파국으로 돌진하는 트럭을 추동했던 디스코 리듬은 ‘Everything Now’에서 아바의 옷을 덧입었다. 꼭 ‘Dancing Queen’ 같은 드럼 비트와 찰랑대는 피아노. 아이티 전통 타악기가 전작에 이상한 원시적 분위기를 더했다면 이번엔 피그미 플루트가 그 역할을 맡는다.

전 세계의 도시 위로, 수억 개의 손 위로 돋아난 안테나는 매분 매초 젊음과 흥분과 상품 정보를 수신한다. 그 모든 킬로바이트가 링거를 타고 뇌로 흘러든다. 전전두엽은 마비되고 우리의 기억과 후회와 망상과 걱정은 0과 1처럼 명멸한다.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순간을 가득 채우고 넘치는 이 모든 것들 사이에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아케이드 파이어#everyth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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