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5년만에 토해낸 댄스가수 케샤의 사자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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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요일 비. 승리의 장미. #260 Kesha ‘Praying’(2017년)

‘당신은 당신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등엔 천사의 날개. 머리엔 가시면류관. 여자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다.

‘내가 이렇게 강해진 건 당신 덕이야. … 당신은 날 지옥불로 밀어 넣었지만.’

이제 서른 살 된 가수에게 할 말인가 싶지만 이것은 필생의 역작이다. 미국 팝스타 케샤(본명 케샤 로즈 세버트·30·사진)가 5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 ‘Rainbow’ 말이다. 그 절정인 ‘Praying’이 보여준다. 불구덩이에서 상처투성이가 돼 돌아온 자. 그가 뿜는 고통과 환희의 사자후가 어떤 건지. 14곡, 48분간 그는 여러 번 감정의 마천루를 등정한다.

지난 몇 년간 댄스 팝 가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2014년, 케샤는 자신의 프로듀서인 유명 음악가 닥터 루크를 고소했다. 그가 수년간 자신을 성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착취했다는 것이다. 분노한 음악 팬들이 케샤를 지지하는 거리 시위까지 벌였지만 송사는 또 다른 얘기였다. 소송은 4년째 진행 중. 다음 달엔 증인 자격으로 레이디 가가까지 재판정에 나오게 생겼다.

케샤는 그간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80곡을 써뒀지만 발표할 수 없었다. 소송 상대자 닥터 루크와 계약한 몸이었으니까. 뒤늦게 빛을 본 신작에서 케샤는 음악적으로도 루크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제작 전반을 손수 지휘했다.

‘그 ××들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게 두지 마.’(‘Bastards’) ‘상처가 우리를 완성한다네.’(‘Rainbow’)

케샤의 절창은 전자음 대신 힘찬 관악기군과 전기기타 사운드의 호위를 받으며 적진으로 총진군한다. 저주를 넘어선 복수의 말은 얼음 비수처럼 차갑다가는 끝내 뜨겁고 성스럽다.

‘당신이 어딘가에서 기도하고 있기를/당신의 영혼이 변화하기를/당신이 평안을 찾기를/무릎 꿇고 기도하기를.’(‘Praying’)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그가 하는 방백은 황야를 헤매는 인간의 질문 같다. ‘나는 죽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무서운 꿈일 뿐인가.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왜일까. 신이나 그딴 게 있다면 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난 버려진 걸까.’

마지막 곡 ‘Spaceship’이 서사시의 대단원을 이룬다. 신의 응답과 같다. ‘늘 말하곤 했지. 내가 죽으면 내 머리를 흙 위에 눕히지 말라고. 삽도, 묘비석도 필요 없을 거라고.’ 곡은 막바지를 향한다. 기타도, 밴조도, 노래도 점점 잦아들고 스피커 쪽으로 굉음이 다가온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 마침내 나타난 우주선으로 누군가 빨려 올라간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kesha#praying#space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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