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작은 지하차고서 열린 오디시의 공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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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5일 일요일 맑음. 지구 투어.
#183 Oddisee ‘I Belong to the World’

미국 래퍼 오디시(왼쪽 사진)와 그의 근작 ‘The Good Fight’ 표지. 사진 출처 오디시 페이스북
미국 래퍼 오디시(왼쪽 사진)와 그의 근작 ‘The Good Fight’ 표지. 사진 출처 오디시 페이스북
빨강과 금빛으로 장식된 2000석짜리 점잖은 콘서트홀, 격렬한 프로레슬링이나 농구 경기가 열릴 법한 뜨거운 1만 석짜리 공연장이나 야구 경기의 성지인 5만 석짜리 돔 구장, 무대에 올림픽 신전과 맞먹는 경외의 오라를 드리워줄 9만 석짜리 스타디움….

세계 순회공연 규모도 가지가지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본 뮤즈나 메탈리카 공연, 일본 오사카 돔에서 본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는 정말이지 웅장했다.

음악의 신이 된 듯한 도취를 만끽하는 근사한 월드투어도 있지만 관객과 땀을 섞는 ‘유기농’ 순회공연도 있게 마련이다. 내가 본 가장 작은 월드투어는 미국 밴드 ‘호스 더 밴드(Horse the Band)’의 2008년 ‘어스 투어(Earth Tour)’다. 이들은 닌텐도코어(Nintendocore)란 장르의 창시자쯤 된다. 닌텐도코어란 말 그대로 닌텐도 게임에 나올 법한 값싸고 경박한 전자효과음을 묵직하고 격렬한 헤비메탈, 펑크 록에 뒤섞은 장르. 그해 서울 홍익대 앞 작은 지하 클럽에서 열린 그들의 공연에 갔다. 그들은 그야말로 게임기의 공격 버튼을 초인적 속도로 연타하는 열 살짜리 꼬마처럼 더없이 뜨겁고 정교한 연주를 들려줬다. 내 인생의 공연 중 하나다. ‘어스 투어’란 원대한 제목에 맞지 않는 초라한 관객 수(20∼30명)는 이 콘서트를 더욱더 전설적으로 만들 뿐이다.

2012년에 본 미국 전자음악가 픽처플레인(Pictureplane)의 내한공연은 더 작았다. 그 역시 음악 장르의 창시자. 하우스 음악에 기괴한 호러물의 이미지를 뒤섞은 위치 하우스(witch house) 장르 말이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생각하면 그 공연에 ‘마이크로 콘서트’ 같은 거창한 영예를 선사하고 싶다. 하지만 홍익대 앞 작은 바 한쪽에서 그의 DJ 장비를 단 두 겹으로 감싸고 열광하는 10명 남짓의 관객과 그가 분투하던 장면은 ‘야바위판’이란 단어랑 자꾸만 같이 떠오른다.

어제(14일) 밤엔 미국 래퍼 오디시의 공연에 갔다. 관객은 적지 않았다. 60∼70명쯤? 장소는 동교동의 한 출판사 지하주차장. 셔터가 내려진 컴컴한 차고 안을 울리는 저음, 오디시의 현란한 랩은 내 뇌를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곳으로 이끌었다. 그 좁고 막힌 곳은 평소엔 닿지 못한 사고의 해안으로 연결된 비밀통로였다. 밖에서 자꾸 비가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디시#공연#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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