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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東亞]“충무공 위토 경매 위기” 보도에 2만명 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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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東亞]“충무공 위토 경매 위기” 보도에 2만명 성금

조종엽기자 입력 2018-01-09 03:00수정 2018-0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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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순신 정신 되살리기 불붙이다
1931년 유적지 보존 운동 앞장… 성금으로 부채 갚고 현충사 중건
장편소설 ‘이순신’ 178회 연재도
청전 이상범 화백이 그린 충무공 영정을 소개한 1932년 5월 29일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임진란, 거북선과 함께 역사를 지은 민족적 은인 이 충무공의 위토 60두락지기가 장차 경매에 넘어갈 운명에 있다고 한다.…모두 빈한한 살림이라 갚을 도리가 없어 오늘까지 왔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종손의 부채 때문에 위토가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며 묘소와 사당, 종가가 모두 퇴락하고 있다는 르포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국난 극복의 상징인 충무공 유적지 보존을 위한 거족적 운동을 촉발시켰다. 동아일보는 “우리는 먼저 민족적 이상이 결여하고, 민족적 자부심이 마비된 조선의 사회를 스스로 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서러워한다”며 사설로 전 민족적 해결을 제안했다. 5월 21일에는 전 민중이 읽을 수 있도록 순 한글로 사설을 쓰기도 했다.

연이은 보도를 보고 명성여자실업학원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주머니를 털어 1전, 2전씩 모아 동아일보에 성금을 보냈다. 동아일보는 5월 23일자부터 6월 말까지 1개 면 전체를 털어 성금 기탁자 명단을 실었다. 다음 해까지 1년간 성금을 보내온 사람은 2만여 명, 400여 개 단체. 총 1만6021원30전이 모였다. 직공부터 어린이까지 전 조선에서 10전, 20전씩 정성을 모은 것이다.

이광수 편집국장이 장편소설 ‘이순신’을 1932년 6월부터 178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광수는 소설 마지막 문장에서 “그때 적을 보고 달아난 무리들이 정권을 잡아 삼백년 호화로운 꿈을 꾸는 동안에 조선의 산에는 나무 한 포기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르고 백성들은 어리석고 가난해졌다”며 피폐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개탄했다.

1931년 5월 23일 저명인사들로 ‘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됐고, 실무를 동아일보가 주관했다. 성금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현충사를 중건했으며 새로 꾸민 사당에 충무공의 검, 금대, 일기, 칙지(勅旨) 등 유물을 안치했다. 위토를 추가로 매입하기도 했다.

1932년 6월 5일 동아일보 전속 화가인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이 그린 충무공 영정을 새 사당에 봉안했다. 봉안식이 열리는 날 현충사 주변에는 3만여 명의 인파가 주변 산야를 뒤덮었고, 천안∼온양 간 임시열차가 운행됐다. 온 겨레가 함께한 잔치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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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이순신#성금#충무공#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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