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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가 마련해준 첫 귀국 독창회… 어머니가 보신 마지막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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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가 마련해준 첫 귀국 독창회… 어머니가 보신 마지막 공연”

동아일보입력 2018-01-09 03:00수정 2018-01-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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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아일보]<11> 소프라노 신영옥씨
1978년 10월 당시 제8회 동아음악콩쿠르 본선 및 대상 선발 연주회를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잘 먹어야 된다며 집에서 자주 고기를 구워 주셨다. “노래를 부드럽게 부르려면 목도 부드러워져야 한다”며 내게 비계가 많이 붙은 고기를 줬다. 아무 과학적 근거도 없었지만 어머님의 말씀에 비계를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당시 콩쿠르 본선 진출자 4명 중 고등학생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내 입으로 얘기하려니 쑥스럽긴 하지만 리틀엔젤스 예술단 활동을 하면서 많은 무대에서 솔로로 노래를 불렀고, TV에도 나올 정도로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기대가 컸다. 당연히 나도 내가 1등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음악콩쿠르 마지막 날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로지나의 아리아와 가곡 ‘못 잊어’를 불렀다. 고등학생이 콩쿠르에서 가곡을 부르는 일은 드문 일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3등이었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1, 2위를 차지했다. 그럴 만했다. 콩쿠르를 앞두고 목감기가 심하게 걸려 병원을 자주 갔다. 림프샘이 부어 노래를 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지금도 콩쿠르에 대한 기억보다는 병원에 자주 다녔던 기억만 난다. 그래도 고등학생으로서 콩쿠르 입상은 대단한 화제였다.

동아음악콩쿠르에 나가기 전 다른 콩쿠르에 도전한 적이 한 번 있었다. 물론 1등이었다. 동아음악콩쿠르 후에도 몇 차례 콩쿠르에 나갔는데 다 1등을 했다. 내가 나간 콩쿠르 중에서 1등을 못 한 콩쿠르는 동아음악콩쿠르가 유일하다. 그러나 동아음악콩쿠르 덕분에 이듬해 미국 뉴욕 줄리아드음악원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아음악콩쿠르에 입상한 후 내 이름을 알렸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아일보와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유학을 떠난 뒤 미국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무대에 서며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한국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무리 해외에서 열심히 활동해도 한국 무대에 서야지 사람들이 알아준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을 때 너의 무대를 직접 보고 싶다”며 자주 전화를 했다. 당시 어머니가 간암으로 투병 중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신영옥. 성악과 무용을 놓고 고민할 때 어머니의 권유로 성악을 선택한 그는 공연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그는 1992년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국내 첫 독창회 포스터(작은 사진)를 간직하고 있다. 신영옥 씨 제공
그때 마침 동아일보사에서 연락이 왔다. 해외에서 그냥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의 대표적인 극장에서 노래하는 한국인으로서 꼭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독창회란 것도 별로 없는 시대였는데 내게 독창회를 제안했다. 다른 곳에서도 독창회를 제안했지만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것이니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었다. 프로그램 구성이나 연주자에 대한 배려 등 모든 면에서 동아일보 주최 공연은 한마디로 완벽했다.

1992년 3월 9일 오후 7시 반 서울 예술의전당. 아직도 시간과 장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지금도 내 방에는 당시 독창회 포스터가 20년 넘게 걸려 있다. 그만큼 내게 소중하고 특별했던 공연이다. 한 방송사에서 그날 독창회를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어머니가 무대 뒤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내 머리를 만져주는 모습 등이 찍혔다. 독창회는 꽤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 인지도도 많이 높아지고, 여러 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해왔다. 그 뒤 동아일보와 함께 1993년, 1995년, 1998년에도 독창회와 오페라를 함께 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2년 넘게 동아꿈나무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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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첫 국내 독창회 다음 해인 1993년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본 딸의 마지막 공연이 동아일보 주최 독창회가 됐다. 지금도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을 지날 때마다 어머니와의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날 때가 많다. 동아일보는 성악가로서 나의 장래성을 알아봐줬고, 한국에 내 이름을 알리게 해줬다. 그리고 어머니가 기억하시는 마지막 공연도 함께 했다.

동아일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동아음악콩쿠르는 물론 서울국제음악콩쿠르까지 운영하며 재능 있는 음악가를 발굴하고 있다. 국내 언론사 중에서 동아일보만큼 한국 클래식 음악에 큰 공헌을 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지령 3만 호를 축하하며, 앞으로도 한국 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해 힘써 줬으면 좋겠다.

소프라노 신영옥씨


#동아일보#신영옥#독창회#동아음악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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