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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前의원 강화도 출신 두 거물 기념사업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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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前의원 강화도 출신 두 거물 기념사업 관여

동아일보입력 2019-04-04 03:00수정 2019-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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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시각장애인 교육의 선구자
죽산 조봉암, 독립운동에도 간첩 누명
2001년 강화읍 강화역사관 입구 공원에 세워진 죽산 조봉암 선생을 기리는 추모비. 죽산기념사업회 제공
시각장애인용 한글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1888∼1963)과 독립운동가임에도 광복 후 간첩죄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비운의 정치인 죽산 조봉암(1899∼1959)은 인천 강화도가 고향이다. 한국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은 열한 살 터울이지만 청년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다.

강화도 출신 박상은 전 국회의원(70)은 송암추모사업회 회장과 죽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고, 지금도 두 단체의 고문을 맡아 생가 복원을 비롯한 기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그의 기억을 바탕으로 강화가 낳은 두 인물, 송암과 죽산의 생애를 살펴본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송암과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던 죽산은 태생부터 생활형편의 차이가 심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송암의 부모는 1860년대 교동도 앞바다에서 난파한 영국 감리교 목사를 구출해 돌봐주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됐다. 이 영향으로 송암을 비롯한 그의 친척들도 기독교를 믿게 됐다.

송암의 큰조카 박형남은 동갑내기 죽산과 친하게 지냈다. 죽산은 그와 함께 인천 기독교청년부(YMCA)에서 활동하면서 방학을 맞으면 교동도에 있는 송암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고 한다. 이때 죽산은 11년 선배인 송암과 의기투합해 친분을 두텁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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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송암은 1905년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이 주도해 강화도에 세운 보창학교를 마쳤다. 그에게 이 선생은 중국 상하이(上海)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자고 권유했으나 송암은 국민 계몽을 위한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1912년 설립한 장애인특수교육기관인 제생원 교사와 인천 영화학교 교장(1936년)을 지낸 시각장애인 교육의 선구자다. 일제 감시를 피해 ‘조선어 점자연구회’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한글점자의 바탕이 된 ‘훈맹정음’을 1926년 완성했다.

죽산 조봉암
팔만대장경을 조판한 강화도 선원사 인근에 살던 죽산은 강화도에서 3·1운동을 벌이다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0년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검거돼 모진 고문을 받고 7년간 옥살이를 했다. 1945년 1월에는 외국과 연락했다는 혐의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가 8·15 광복과 더불어 7개월 만에 풀려났다.

제헌의회 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며 토지개혁을 주도했다. 2,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2위 득표를 했으나 진보당 창당 이후 간첩죄로 복역하다 1959년 7월 31일 사형에 처해졌다. 대법원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던 이 사건을 재심해 2011년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망우리)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인천시와 강화군은 송암과 죽산의 생가 터를 사들이기로 하는 등 복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죽산 탄생 120주년, 사형 집행 60년을 맞는 올해 인천에서는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조각상 건립을 위한 시민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평화의 섬 교동도#송암 박두성#죽산 조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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