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7〉‘결혼반대협회’ 화환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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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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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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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부부 싸움을 자주 하는 내 친구가 있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 3년 차까지 부부 싸움을 많이 하다가 3년이 지나면 부부 싸움이 잦아든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달랐다.

“요즘에도 자주 싸워?”

“어제 저녁에도 싸우고, 오늘 아침에도 싸웠어… 결혼 반대 협회 같은 건 없나?”

“없으면, 우리가 만들까? 세계결혼반대협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장난삼아 ‘세계결혼반대협회’를 만들었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나 신혼인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협회 들어올래?”라고 물었다.

“무슨 협회요?”

“세계결혼반대협회. 내가 부회장이고 이 친구가 회장이야!”

유부남, 유부녀들이 있는 자리에서 ‘세계결혼반대협회’ 얘기를 꺼내면 항상 반응이 좋았다. 그 무렵 늦은 장가를 가는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축하 화환으로 장난을 치고 싶어서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세계결혼반대협회 회원 일동’이라는 문구를 써서 예식장 입구에 세워놨는데, 그 문구가 재밌었는지 이를 사진 찍는 하객이 많았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가려고 주차장에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예식장 관계자가 조용히 오더니 말을 건넸다.

“저기, 아까 신랑 측 화환을 보니까 ‘세계결혼반대협회’라는 게 있던데, 혹시 진짜로 있는 곳인가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재밌어서 친구의 결혼식이나 집들이를 갈 때면 늘 ‘세계결혼반대협회’ 이름으로 화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정말 늦게 장가를 간 형이 있어서 그 형네 집들이 선물로 행복나무를 사러 갔다. 10만 원짜리 행복나무를 주문했더니 꽃가게 여사장님께서 물었다.

“멘트는 뭐라고 적어 드릴까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세계결혼반대협회 회원 일동’이라고 적어 주세요.”

꽃가게 여사장님은 분홍색 리본에 궁서체로 글씨를 인쇄해서 행복나무에 걸어주시면서 말했다.

“여기 회비가 얼마나 되나요?”

“저희는 회원님들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회비 없이 협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도 가입해야겠네요. 아휴 이 인간, 아까부터 전화도 안 받고 또 어디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건지.”

“힘내세요, 회원님!”

한동안 어딜 가나 ‘세계결혼반대협회’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요즘은 여기저기서 가입하겠다고 난리다. 회원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결혼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데, 회원이 안 늘어나도 좋으니까 다들 결혼생활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유명무실한 ‘세계결혼반대협회’를 진짜 만들어볼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부부#결혼#세계결혼반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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