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어머니’가 뭐야?”…南서 첫 공개상영 北영화 ‘우리집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6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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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문화

“어, 정말 핸드폰을 갖고 다니네”, “저 축구복, 푸마 아니야?”

15일 오후 8시 경기 부천시청 야외광장.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최초로 북한 영화 공개 상영회를 열었다.

○ 4·27 이후 첫 문화교류…‘우리집 이야기’는 최초 공개

이날 대형스크린을 통해 공개된 영화는 2016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받은 ‘우리집 이야기’. 김정은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작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처음 공개됐다. 이번 상영은 4·27 남북정상회담 후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문화교류 활동으로, 별도 허용 절차를 거쳐 ‘제한 상영’으로만 볼 수 있었던 북한 영화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IFAN 측은 올 초 통일부의 사전 접촉 승인을 받아 최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로부터 작품 상영 허가를 받았다.

‘우리집 이야기’는 부모를 잃은 세 남매 중 자존심 세고 공부 잘하는 15살 맏이 ‘은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 없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다, 조건 없이 애정을 베푸는 이웃 언니 ‘정아’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사회의 사랑을 깨닫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 일상과 유머그린 초반부…간접적 생활상 드러나

영화의 초반부는 대다수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비교적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끼리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 약 200여 명이 이날 상영회를 찾았다. 스크린 앞 좌석은 물론 잔디밭에도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특히 은정이 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명하던 교사가 웃음을 유도하는 ‘북한식 유머’도 나왔다. “세 평방의 정리를 발견한 피타고라스가, 너무 좋아서 돼지 300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여 돼지 300마리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성립될 수 없지만 네 평방의 정리를 발견했으면 돼지 400마리를 잡지 않았을까요?”

또 세 남매가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왔는데, 은정이 동생들에게 국수를 만들어주자 막내 은철이가 “밥이나 토마토를 먹고 싶다”고 반찬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이런 동생들에게 섭섭함을 느낀 은정이 집을 뛰쳐나가자, 은철이 태연하게 “돌아 올 거야”라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정아가 일터에서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는 장면도 등장했는데, 이 때 상품으로 1등은 ‘봄향기화장품’이, 2등은 치마 저고리, 3등에겐 학용품이 주어졌다. 은철이가 학교에서 축구하는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붉은 푸마 체육복을 입은 모습도 나왔다.

정아가 은정에게 “죽도록 공부해,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어”라고 하자 폭소가 터지는가하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거나, 어색한 플래시백 장면이 한국 영화와 사뭇 달라 웃음이 나왔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버이 원수님’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체제 선전적인 내용이 나오자 허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 관객 반응은? “예상 외로 자연스럽지만 갈수록 의도 뻔해져”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생각보다 볼만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부천 시민인 이득규 씨(46)는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함께 키웠던 기억도 나고, 초반부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더빙이어서 어색하고 기술도 완벽하지 않아 영화로서 평가하기보다는 귀엽게 봤다”고 했다. 매번 부천영화제를 찾는다는 박수만 씨(34)는 “예상 외로 주연 배우의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카메라 연출이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해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북한 영화가 궁금해 친구들과 찾은 김미정 씨(50·여)는 “영화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인다. 꽃제비라던가,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많이 들어왔는데 삼남매의 집안 환경이 깨끗하고, 서랍형 김치 냉장고가 나와 북한 관객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윤은채 씨(34)는 “영화의 최대 반전이 ‘우리집은 결국 당’이라는 메시지였다. 군대를 20년 간다거나 ‘정아’를 ‘처녀-어머니’라고 호칭하는 부분이 놀라웠다”면서도 “북한 사람들의 옷이나 음식, 집 등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재밌었다”고 말했다.

○ 체제 선전이 목적…판타지 장르 없는 북한 영화

이날 상영 직전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와 재일교포 박영이 감독이 무대 인사를 통해 북한 영화를 소개했다. 전 교수는 북한 영화와 드라마를 연구했고, 박 감독은 남북한을 오고가며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체제 선전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판타지나 범죄물 등 장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 교수는 “북한 사람들이 만약 한국 영화를 본다면 왜 이렇게 공포물이 많으냐고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70년 동안 벌어진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박 감독은 “최근 북한 영화는 인간의 삶과 양심, 도덕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우리집 이야기’가 이러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며 “사회 문제나 나라를 지킨다는 의식을 강조해 교육적인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사상적인 것보다 유연하고 생활적인 모습을 담으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가 영화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짝수 해마다 북한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인 ‘평양국제영화축전’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박 감독에 따르면 티켓 값이 저렴해 생각보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영화를 즐긴다고 한다. 특히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평소 볼 수 없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영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박 감독에게 티켓을 몰래 구해달라고 요청해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0일 동안 열리며, 이 기간 동안 평양 내 10개 가량 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박 감독은 “가장 큰 영화관인 평양국제영화관에는 100~2000개 좌석이 있는 상영관 6개가 있고, 그밖에 ‘개선문 영화관’, ‘대동문 영화관’이 있다”고 전했다.

부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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