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공연 뒤풀이때 성추행 만연” 팬들 미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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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성폭력 문화’ 폭로 잇따라
어린 여학생 끌어안고 키스 예사… 성관계 영상촬영 요구도
200여건 피해 사례집 곧 출간

인디음악계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퍼지고 있다. 이달에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힌 피해자가 5명이 넘는다. 주로 인디밴드 멤버가 팬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이들이 자주 접촉하는 환경에 ‘팬덤’에 따른 위계 관계에서 성폭력 피해가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12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만난 신모씨(21·여)는 미성년자 때부터 인디밴드 멤버 및 다른 남성 팬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신 씨는 앞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투 폭로를 했다. 신 씨는 “인디밴드 멤버와 남성 팬들이 나를 포함한 여러 미성년자에게 수시로 뽀뽀하고 끌어안았다. 잠자리를 하자고 강요한 전 인디밴드 멤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말을 듣지 않으면 인디씬에서 묻어버리고 공연장에 못 오게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인디씬은 영화계와 연극계처럼 인디음악계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인디밴드계의 성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디음악계 성폭력 실태를 모아놓은 온라인 고발 자료 ‘인디밴드의 공연을 안 가는 이유들’에는 2016년 10월까지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 약 200건이 담겨 있다. 이 자료는 인디씬에서 발생한 성범죄 피해 등을 제보받아 실태를 알리고 가해자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인디밴드 멤버 A 씨는 자신의 팬을 골목으로 끌고 가 특정 신체 부위를 쓰다듬으며 “나는 무정자증이라 콘돔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모 인디밴드 기획사 관계자는 팬에게 “걸어 다닐 때마다 엉덩이가 커서 ○○하고 싶다”고 한 뒤 음란한 신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전문가들은 인디밴드계의 독특한 문화가 성폭력 피해를 키웠다고 분석한다. 인디밴드계는 공연 후 ‘애프터파티(뒤풀이)’가 잦아 밴드 멤버와 팬이 좁은 공간에서 만날 기회가 많다. 멤버 생일에는 이름을 따 ‘△△절’로 정한 뒤 팬과 만난다. 인디밴드 멤버 B 씨(26·여)는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자주 찾는데 이를 악용하는 남성들이 있다”고 말했다.

동경하는 밴드 멤버와 팬의 거리가 가깝고 접촉이 잦은 환경에서는 이른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빈번해진다. 가스라이팅은 권력적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통제해 본인의 생각에 동조하게끔 만드는 걸 뜻한다. 여성 팬 C 씨는 6일 페이스북에 “연인이던 인디밴드 가수 D 씨가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포르노 배우 포즈를 취하라고 계속 요구했다. 원치 않았지만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허락해 주는 가스라이팅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제도권 밖에서 자유분방하게 예술 하자고 모인 인디씬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자유라면서 개의치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정현우·이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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