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체 톡톡]‘에바 쎄바 참치’를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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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동의? 어 보감’,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요즘 10대들이 쓰는 은어라는데요. 10대 학생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 때문에 일명 ‘급식체’라고 부른답니다. 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급식체가 뭡니까?

“‘에바 쎄바 참치’라고 하면 ‘오바한다’는 뜻이에요. ‘오바’를 인터넷 BJ가 발음을 웃기게 하려고 ‘에바’로 바꾸고, 랩처럼 비슷한 단어로 말을 만들어 이어붙이다 보니 외국의 통조림 브랜드인 ‘에바 참치’를 붙이고, 별 의미는 없지만 ‘쎄바’란 말을 보태서 ‘에바 쎄바 참치’로 확장된 거죠.” ―이지민 씨(24·대학생)

“급식체는 줄임말, 초성 단어 등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말이 너무 심하다’를 ‘말넘심’으로 줄이거나, 카카오톡에서 ‘ㄹㅇ’(리얼·진짜냐는 의미) 등으로 쓰는 식이죠.” ―장모 군(17·고등학생)

“솔직히 뭐가 급식체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에서는 많이 쓴다고 하는데 실제 급식체로 대화하는 학생들은 못 봤어요. 주변에도 분위기를 띄울 때 가끔 한두 단어씩 쓰는 정도지 그 말로 대화하는 사람은 없죠. 괜히 TV나 신문에서 호들갑 떠는 느낌이랄까요?” ―강상익 씨(28·직장인)

“한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한 뒤 친구들이랑 급식체를 쓰기 시작했어요. ‘오진다’(대단하다는 의미), ‘인정각’(인정할 만하다는 의미), ‘머박’(대박이라는 뜻) 정도를 쓰는 편이에요. 쓰긴 쓰는데 많이 알려진 것 아니면 저도 무슨 뜻인지 잘 몰라요.” ―김승혁 군(12·서울 덕수초등학교)

“주변에서 급식체 말투를 많이 쓰긴 하는데, 가끔은 저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할 때가 있어요. ‘지리고요 오지고요 고요고요 고요한 밤이고요’ 같은 문장은 어떤 뜻인지 헷갈리죠. 제가 ‘문찐’(유행을 따라가는 데 느리다는 표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정신비 양(15·중학생)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카톡방을 보는데 암호 해독 수준이더라고요. 이러다가 중학생이 되면 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한참 검색하고 연습해서 ‘오늘 저녁 맛있는 거 인정하는 부분이냐?’ 했더니 아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신모 씨(43·공무원)
 
신라 때도 줄임말은 있었겠죠?

“은어, 속어, 줄임말은 할아버지 세대에도 있었잖아요? 특별히 지금 애들만 문제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말이라는 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합의가 있다면 변형해서 쓸 수 있는 거니까요. 사적인 자리에서 조금씩 사용하는 건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모 씨(38·금융업)

“급식체가 유행한 뒤로 저희끼리 일종의 ‘급식 테스트’가 유행하고 있어요. 어디선가 배운 급식체를 ‘이거 아냐?’며 테스트한 뒤 ‘아직 젊다’ 혹은 ‘이제 늙었다’ 하는 거죠. 급식체에 호기심이 있다기보다는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강아진 씨(29·직장인)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급식체를 가려서 씁니다. 거친 표현이나 욕은 알아서들 자제하죠. 그래서 딱히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쓰는 급식체를 잘 들어 보면 100% 비속어나 욕설도 아니고 무의미한 말도 아닌 어중간한 유행어 느낌이라 생명이 길지 않을 거라고 봐요. 오히려 전 세대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과도한 줄임말이 좀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경준 씨(36·고등학교 국어 교사)
 
뭔 소리인가요

“급식체는 유행어라기보다 언어파괴, 국어농락 같아요. 초성으로 줄임말을 쓰는 것까진 괜찮은데, 끝말이 비슷한 단어를 의미 없이 나열하는 건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백운타 병살타 보룬타 삼루타 소나타 소취타…’ 이런 걸 왜 하죠?” ―손병준 씨(43·자영업)

“인터넷 댓글을 보다 보면 화가 나요. 다른 유행어들은 재미있거나 빵 터지는 부분이 있는데, 급식체는 언어유희의 재미도 모르겠고 어떤 단어는 저급한 것 같아요. 오지다 지렸다가 대표적인데, 남편이 얼마 전 그 단어를 쓰길래 아기 똥기저귀를 보여주면서 ‘이게 지린거야. 그런 말 쓰지 마’ 하고 쏘아붙였어요.” ―박모 씨(33·직장인)

“초등학생들이 급식체를 배우는 경로를 파악해 보니 인터넷 방송 등을 보면서 배우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중학생 형들에게 표현을 배우는 경우가 많더군요. ‘레알 밥도둑’(진정한 밥도둑)이라는 말처럼 비하적 의미이거나 거친 표현이 많아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조은 씨(25·서울 관악구 소재 초등학교 교사)
 
한때 그러고 말겠지요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한글이랑 영어를 혼합해서 쓰고 놀지 않았나요? 모음 ㅏ 대신 r를 쓴다거나 ㅌ 대신 E를 쓰는 식으로요. ‘ㄱr끔 눈물을 흘ㄹLㄷr.’ 이런 거 유행했잖아요.” ―문혁준 씨(29·직장인)

“제가 초등학생 때 싸이월드나 버디버디에서 특수문자를 이용한 일명 ‘외계어’가 유행했는데, 그때도 언론에서 떠들썩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외계어를 사용하지 않잖아요? ‘방가루’ ‘하이루’ 등 채팅용어나 ‘도깨비언어’, ‘긔체’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죠.” ―오가연 씨(28·직장인)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한글 입력하기가 번거로웠어요. 그래서 ‘ㅇㅇ’(‘응’이라는 뜻)처럼 자음으로만 된 단어를 많이 썼죠. 눈물 흘린다는 의미로 ‘안습’(안구에 습기)을, 뭔가를 포기한다는 의미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인 ‘GG’를 쓰기도 했고요. 그런 것도 일종의 급식체겠죠.” ―김형철 씨(40·회사원)

“급여체, 줌마체도 있어요. 같은 집단에 속한 이들끼리 친밀감은 느끼는데, 이렇게 유행어가 크게 달라진다면 세대갈등이 더 커질까봐 걱정이에요.” ―김진미 씨(40·학부모)
 
비하·차별은 삼가야

“유행어는 점차 실시간으로 대화할 때 쓰이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어요. 특히 급식체는 문자를 기반으로 탄생한 유행어가 아니라 실제 대화하는 상황에서 음성 언어를 기반으로 탄생한 유행어예요. 그래서 ‘에바 쎄바’, ‘오지고요 지리고요 고요한 밤이고요’ 같은 리듬이 생겨날 수 있었죠.” ―박선우 씨(44·계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인터넷에서 쓰이는 단어를 BJ들이 변형시키고, 학생들이 다시 퍼뜨리면서 발전한 것이 급식체죠. TV에서 개그맨들이 방송하면 사람들이 그냥 따라하던 일방향성에서 계속 발전하는 쌍방향성으로 나아간 것이죠. 급식체는 보통 쓰던 단어에 문자해체를 하는 방식이 많은데(명작을 ‘띵작’으로, 귀여워를 ‘커여워’로 바꾸는 식), 이런 작업을 통해서 기성세대와의 차별성과 그들만의 동질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강옥미 씨(58·조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급식체 중 차별적인 용어도 적지 않습니다. 노인 비하 용어인 ‘틀딱충’(틀니 딱딱+벌레 충)처럼 인격을 모독하는 용어가 적지 않거든요. 재미있다고 그런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사이에 비하나 차별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무뎌지게 되죠.” ―이정복 씨(51·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급식체는 가벼운 언어입니다. 그러다 보니 급식체를 수시로 쓰는 세대들의 이야기도 우스운 내용을 추구하게 되고 가벼워지죠. 학생들은 진중하게 생각하고 깊이 있게 논의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데 유행어가 그런 교육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하재근 씨(46·대중문화평론가)

“급식체는 지금까지의 유행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어감과 의미를 갖고 있는 유행어입니다. 급식체 유행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 후에는 급식체보다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제2의 급식체’가 되어서 학생들 사이에 유행할 겁니다. 어휘력과 문장력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겠죠.” ―김남식 씨(39·동주여자중학교 국어 교사)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조경준 인턴기자 한국외대 경제학과 3학년
#에바 쎄바 참치#급식체#제2의 급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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