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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가까울수록 낯설게 느껴지는 관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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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가까울수록 낯설게 느껴지는 관계의 틈

장선희기자 입력 2017-02-18 03:00수정 2017-02-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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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들/에쿠니 가오리 지음·신유희 옮김/336쪽·1만3800원·소담출판사
사람은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이름을 부여받는다. 내가 누군가의 딸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내이고, 엄마이듯이.

상대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의 다른 면을 엿보게 될 때가 있다. 책에서처럼 그저 ‘말 많은 아줌마’인 줄 알았던 엄마가 인터넷에선 웬 닉네임으로 다른 남자와 로맨틱하게 만나 온 사실을 알게 됐거나, 바람나서 처자식 버리고 새 살림을 차린 나쁜 아빠가 알고 보니 다른 누군가에겐 온순하고 귀여운 남자였다거나 하는…. 그럴 때, 상대는 길에서 마주친 난생처음 보는 사람보다도 더 낯설게 느껴지니 참 묘한 일이다.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새 책 ‘벌거숭이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명한다. 소설은 주인공인 치과의사 모모의 친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동시에 모모는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던 오랜 연인과 헤어져 아홉 살 연하남과 사귀게 되면서 삶에 새 국면을 맞는다. 모모 이야기에서 출발한 소설은 열 명도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등에서 연애 감정을 세련되게 그려내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거느린 작가는 이번엔 연애를 넘어 ‘관계’ 전반으로 시선을 돌린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그들의 일부분에 불과할 테니. 자연히 누군가의 어떤 모습에 실망하고 미워하는 것도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더 혼란스러워진다.

소설엔 별다른 장면 전환의 장치가 없다. 혼자 흰 쌀밥에 간장을 뿌려 먹는 은퇴한 중년 남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로 시선이 옮겨 가는 식이다. 물 흐르듯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어느새 슬쩍 빠져나간다. 작가를 따라 소설 속 수많은 관계를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모모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모든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고 모모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벌거숭이들#에쿠니 가오리#냉정과 열정 사이#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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