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경쾌한 판타지… 아빠도 푹 빠지겠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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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트롤/앨런 스노 지음/이나경 옮김/552쪽·1만7000원·아르테
기발한 이야기 곳곳에 퍼져있고 상상력 자극하는 일러스트 매력

‘박스트롤’을 원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소설 속에는 캐비지헤드, 야생 치즈, 민물 바다소, 깡충 오소리, 땅돼지, 토끼 아주머니 등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영화 ‘박스트롤’ 스틸컷
‘박스트롤’을 원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소설 속에는 캐비지헤드, 야생 치즈, 민물 바다소, 깡충 오소리, 땅돼지, 토끼 아주머니 등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영화 ‘박스트롤’ 스틸컷

소설의 무대인 래트브리지(Ratbridge)는 일찍 치즈 산업이 발달했지만 새로운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매연과 쓰레기 문제로 물과 환경이 오염된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육각형 엉덩이’ 같은 괴상한 유행도 프랑스 파리 것이라고 하면 맹목적으로 좇는 엉터리들이다. 경찰은 더하다. 그들은 팔각형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엉덩이가 아파서 지르는 소리 때문에 도둑들은 미리 도망친다. 또 치즈 껍질을 끓여 추출한 기름을 덜 숙성된 치즈에 넣어 불량치즈를 만든 뒤 파는 악덕 인간도 있다. 하긴 이곳에선 쥐가 인간보다 지능이 높다.

인간과 달리 동물과 괴물들은 개성 만점, 매력 만점이다. 원제도 ‘Here be monsters!’다.

지하 파이프 수리를 담당하는 변종 괴물 ‘박스트롤’은 수줍음이 많아서 상자를 옷처럼 입고 산다. 수십 m 지하의 넓은 동굴에는 양배추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캐비지헤드’가 모여 살면서 채소를 키운다. 하수구에는 커다랗고 착한 눈을 가진 덩치 큰 민물 바다소가 산다. 이 정도는 평범한 수준의 괴물이나 동물이다. 조금 더 센 생명체를 소개하면, 목초지와 숲에는 두 발 달린 ‘야생 치즈’가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정작 주인공 소개가 늦었다. 소년 아서는 윌리엄 할아버지와 함께 지하 세계에 산다. 아서는 지상으로 나올 수 없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날개 달린 기계를 몸에 매달고 음식을 구하러 다닌다. 그러던 중 ‘야생 치즈’를 불법으로 사냥하는 악당 스내처 일당과 마주친다.

영국 작가 앨런 스노는 “작가가 되지않았다면 엄청나게 맛있는 아이스크 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Valerie Macon
영국 작가 앨런 스노는 “작가가 되지않았다면 엄청나게 맛있는 아이스크 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Valerie Macon
용감한 아서가 이들과 맞서 싸우는 활약과 모험이 큰 줄거리다. 스내처 일당은 훔친 ‘크기를 바꾸는 기계’를 이용해 박스트롤과 캐비지헤드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자신의 말을 듣는 다른 동물의 크기를 키워 래트브리지를 장악하려고 한다. 아서가 크기가 작아진 박스트롤과 캐비지헤드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빵빵하게 육각형으로 부풀린 인간들의 엉덩이 크기를 줄이는 등 책에는 시종 기발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서의 모험과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또 다른 볼거리다. 패션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저자는 래트브리지 지상과 지하의 지도, 등장인물과 상황을 묘사한 흑백 드로잉 500여 점을 직접 그려 수록했다. 상상력이 부족한 어른들도 래트브리지 세계에 빠지도록 돕는다.

어린 자녀나 조카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어른도 읽길 권한다.

래트브리지 인간들은 지나가는 괴물들을 도통 쳐다보지 않는다.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아서와 괴물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함께’다. “함께 작업하는 게 우리 특기”라며 우정과 헌신으로 스내처 악당에 맞선다.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돕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기본적 덕목을 어른들은 잊고 사는 게 아닌지.

스톱 애니메이션 제작사 라이카 스튜디오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해 62개국에서 개봉했다. 국내에서도 6일부터 상영하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스트롤#래트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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