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배우, 무대]겹겹이 놓인 액자속에 켜켜이 쌓인 과거 상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연극 ‘가을소나타’

연극 ‘가을소나타’의 나무 액자와 창틀은 액자 속 사진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상처를 상징한다. 2층 방에서 이야기하는 샬롯(손숙·왼쪽)과 에바(서은경).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가을소나타’의 나무 액자와 창틀은 액자 속 사진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상처를 상징한다. 2층 방에서 이야기하는 샬롯(손숙·왼쪽)과 에바(서은경). 신시컴퍼니 제공
“엄마는 엄마밖에 모르니까, 엄마는 항상 돋보이는 곳에 있어야 하니까!”(에바 역·서은경)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지.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샬롯 역·손숙)

엄마와 딸이 쏟아내는 말은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다. 연극 ‘가을소나타’는 엄마와 딸 사이에 깊숙이 뿌리 내린 상처와 애증을 다뤘다. 연출가 임영웅이 연출 인생 60년을 기념해 올렸다.

성공한 피아니스트인 엄마 샬롯은 가족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큰딸 에바는 그런 엄마로 인해 큰 상처를 받는다. 7년 만에 만난 모녀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결국 감정은 맹렬하게 폭발한다.

이런 미묘한 감정을 뒷받침하는 무대의 핵심 장치는 곳곳에 배치된 나무 액자들이다.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고 2층에는 샬롯이 머무르는 방, 장애가 있는 둘째 딸 엘레나의 방이 있다. 창문과 방문은 모두 나무 액자처럼 틀만 있다. 샬롯 방에는 4개의 크기가 다른 액자 틀이 매달려 있다.

거실과 이어지는 주방도 액자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방 입구를 액자 틀이 감싸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극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주방 식탁에 앉아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에바의 모습은 액자 속 사진 같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대본을 읽자마자 액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액자 속 사진은 과거의 기억이다. 겹겹이 놓인 액자를 통해 켜켜이 쌓인 과거의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액자가 가득한 무대에서 에바와 샬롯이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은 앨범 속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억 속 사진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샬롯은 에바를 위해 치아 교정을 시키고, 낙태를 시켰다고 여긴다. 하지만 에바는 그 모든 것이 일방적인 폭력이었다고 절규한다. 에바의 말처럼 ‘엄마의 말은 엄마의 기억 속에서만, 내 말은 내 기억 속에서만 현실’일 뿐이다.

나무로 된 액자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랗게 단풍 든 자작나무는 따뜻하다. 포근한 집 안에서 벌어진 상처와 갈등은 그래서 더 또렷하게 보인다.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3만∼5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을소나타#나무액자#무대#연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