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ISSUE]인기있는 남녀 둘-인기없는 남녀 둘, 이들 4명의 최적 짝짓기 방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당신 주변에서 ‘재미있는 수학’을 만나보세요

수학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이 가장 흔히 내뱉는 말이 있다.

“수학 이딴 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요?”

써먹을 일은 많다. 그것도 무궁무진하게.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다. 수학자들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된다. 수학은 사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 왔다. 고대인도 농경지 면적을 계산하고 건축구조물을 설계할 때 수학의 힘을 빌렸다. 현대문명의 ‘총아’인 컴퓨터도 결국은 수학을 토대로 발명됐다. 수학자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학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즉 ‘고루하고 답답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변의 이야기들로 수학의 효용성이나 친근함을 알리길 원한다. 그런 사례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진 않다.

스포츠 강타한 수학 신드롬

영화 한 편을 우선 떠올려보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2002년 시즌을 앞두고 주축 선수 3명(제이슨 지암비, 조니 데이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을 잃어버린다. 이들의 공백을 메워야 하지만 선수 스카우트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 볼’(2011년)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빌리 빈 단장(50)은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인 피터 브랜드와 함께 ‘저연봉 고효율’ 선수 발굴에 나선다. 기준은 출루율에 근거한 기여도. “쟤는 애인이 못생겼어.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지”라는 따위의 말들이 난무하는 스카우트 회의에서 피터가 말한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평가절하되어 왔죠. 빌 제임스(야구 통계의 아버지 같은 인물)와 수학통계가 그런 평가를 깬 거예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전년도 정규시즌에서 102승을 거뒀던 오클랜드는 ‘죽을 쑬 것’으로 예상됐던 그해에도 103번이나 이겼다. 20연승이라는 아메리칸리그 신기록까지 세우면서. 연봉총액 28위 팀(총 30개 팀)이 메이저리그 최다승 팀에 오르면서 통계야구, 즉 수학의 파워가 입증됐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천문학적인 연봉을 제의받고도 오클랜드에 남은 빈은 아직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대신 ‘수학적 가치산출’이라는 그의 철학을 높이 산 보스턴은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당시 단장은 만 31세의 테오 앱스타인(현 시카고 컵스 단장)이었다. 조금 과장한다면 무려 86년간 시달린 ‘밤비노의 저주’를 결국 수학적 해법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밤비노의 저주’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그의 애칭이 바로 ‘밤비노’)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뒤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하자 생긴 말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사실을 기초로 하지만, 몇 가지 픽션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부단장 브랜드. 그의 실존 모델은 폴 데포데스타(39)로 예일대가 아닌 하버드대를 나왔고, 극중 인물과 달리 매우 날씬하다. 빈과 함께 일한 것도 영화에서보다 앞선 1999년부터다.

경제학상 움켜쥔 수학자

남녀 짝짓기에서도 수학이론이 통용될 수 있다. 인기가 매우 좋은 남자(A)와 여자(B)가 있다. 그리고 인기가 별로 없는 남자(a)와 여자(b)가 있다. 4명이 어떤 식으로 짝짓기를 해야 가장 안정적인 사회가 될까. 첫째는 인기 있는 사람끼리(A-B), 없는 사람끼리(a-b) 파트너가 되는 방법이 있고, 둘째로는 서로 섞일(A-b, a-B)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가장 안정적인 사회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전자가 더 바람직하다.

왜일까. 개인으로 따지면 두 방법 모두 2명은 만족스럽고, 2명은 불만족스럽다. 그러니 그룹의 관점에서 따져봐야 한다. A가 b와 짝이 되면, A는 좀 더 나은 B를 힐끔거리게 된다. 마침 자신의 파트너(a)가 만족스럽지 않은 B도 A를 원한다. 이는 불륜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하고, 결과적으로 두 커플 모두 깨질 확률이 높아진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A-B, a-b로 연결되면 a와 b는 서로 불만족스럽겠지만 불륜을 저지르진 않는다. 현 상황에 만족하는 A와 B가 한눈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탄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의 핵심 개념이다. 수학자인 로이드 섀플리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명예교수(89)가 1962년 동료 수학자 데이비드 게일(작고)과 함께 발표한 것으로 ‘전통적 결혼 알고리즘’으로도 불린다.

섀플리와 공동수상한 앨빈 로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61)는 다양한 현실에서 이 이론을 증명해냈다. 그는 2003년 뉴욕 시 공립학교 배정제도에 자신의 ‘매칭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전에는 한 학생이 1∼5순위까지 지망학교를 써내고 학교가 학생을 고르는 식이었다. 학생과 학교 모두 불만이 많았다. 로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1지망 학교만 지원하고, 각 학교는 그 학생들을 정원 한도 내에서 모두 합격시키도록 했다. 떨어진 학생들은 다시 한 학교씩 지원한다. 그는 마지막 학생이 입학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다. 로스 교수는 나아가 전문직의 구인구직 프로그램이나 환자와 장기제공자를 연결할 때도 이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전에도 여러 수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존인물 존 내시 프린스턴대 교수(84·1994년 수상)도 그중 하나다. 그가 27쪽짜리 박사학위 논문(‘비협력게임’, 1950년)을 통해 발표한 ‘내시 균형’은 현대 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학은 ‘팔방미인’


이달 초 미국 대선은 또 한 명을 스타덤에 올렸다. 통계전문가 네이트 실버(34)다. 그는 1년 전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성공을 점쳤다. 자신을 비판하는 정치평론가들에게 ‘2000달러 내기’를 제의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결국 전국 득표율을 근사치까지 맞혔고, 50개 주 각각의 승패까지 정확히 예상했다. 2008년 대선에선 49개 주를 맞혔으니 한 단계 진보한 셈이다. 이만하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고의 스타였던 점쟁이 문어 ‘파울’도 울고 갈 만하다. 일찍이 야구 승률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그의 무기는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이 아닌 수학이었다.

올 6월 호암상 예술상을 받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 진은숙 씨(51·여). 음악계 최고권위의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은 그의 오페라 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2007년 초연)가 있다. 동명의 원작(1865년)을 쓴 루이스 캐럴(1832∼1898)이 수학자였던 건 잘 알려진 사실. 이 때문에 책 곳곳에는 수학과 논리학을 근거로 한 수많은 말장난과 상황들이 연출돼 있다. 최고의 ‘루이스 캐럴 전문가’였던 마틴 가드너(1914∼2010)는 ‘앨리스 주석판’(The Annotated Alice·1960년)을 썼다. 진 씨는 주석판에 소개된 수학적 사실들에서 수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67)의 명저 ‘괴델, 에셔, 바흐’(영원한 황금노끈)도 그에게 적잖은 음악적 영감을 줬다. 이처럼 수학은 음악가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얘깃거리들로 무장한 두 수학자가 대중 앞에 선다. 포스텍의 김민형(49), 박형주 교수(48)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수학콘서트의 형식으로 대중에게 ‘수학은 재밌다’는 선전포고를 할 작정이다. 콘서트 이름은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동명 작품의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28일 오후 7시, 색다른 수학이야기가 펼쳐질 장소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인터파크 아트센터다(문의 02-6004-6882, 신청은 19일 오전까지, www.interpark.com에서도 가능, 무료).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을 미리 만나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수학은 재미있다, 단지 우리가 알아주지 않았을 뿐.’

포항=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