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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전세계 팬 30만… 케이팝 전파하는 커플스타

동아일보

입력 2012-09-20 03:00:00 수정 2012-09-20 20:33:38

블로그-유튜브 통해 한국 문화와 음악 알리는 캐나다 출신 사이먼-마티나 부부

《 “우아아아아!” “꺄아악! 사랑해요∼.”

5월 22일 오후 8시 반.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야외공연장 ‘쇼어라인 앰피시어터’. 이곳에 모인 1만여 명이 환호성을 올렸다.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이 출연하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콘서트가 구글과 유튜브, MBC 공동주최로 열리는 날이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인데…. 누굴 보고 이러지?” 공연장에 들어선 캐나다 출신의 29세 동갑내기 사이먼과 마티나 스타스키 부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대는 비어 있었다. 고개를 돌렸지만 자신들 뒤에 나타난 한류스타도 없었다. 》
“사이먼과 마티나! 사랑해요. 잇 유어 김치(Eat your kimchi).” 관객들은 이 부부에게 환호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둘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피켓을 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케이팝 비디오자키(VJ)로 활동하는 이 부부가 관객 신분으로 이 콘서트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하루 전인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자 팬들이 자발적으로 환대를 준비한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후 SNS에 인증 샷을 올리는 이도 여럿이었다.

가수 싸이와 소녀시대만이 아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이 부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한류 스타다. 관객의 환호에 젖은 둘의 머릿속에는 4년 전의 ‘그날’이 떠올랐다.


○ 낯선 땅 한국, 그리고 순두부찌개

2008년 5월 28일 오후 10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타스키 부부에게는 깊은 피로감이 엄습했다. 장시간 비행 탓만이 아니었다. 처음 와보는 낯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 무엇보다 자신들의 한국행을 극구 말리던 부모님을 설득하던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감이 몰려왔다. 남북관계가 경직돼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시점이었다.

집을 마련한 경기 부천행 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둘은 마음이 놓였다. 현대적인 고층빌딩과 한국인들의 밝은 표정이 활기차 보였다.

1년 전만 해도 이들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부모를 따라 6세 때 캐나다 온타리오 주 피커링으로 이주한 사이먼은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고교 졸업 직전 운동을 포기한 후 공부에 매진해 토론토대(영문학 전공)에 진학했다. 같은 주 이토비코크 출신인 마티나 역시 고교 교사였던 부모 밑에서 자란 우등생이었다. 그 역시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시낭송 수업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둘은 2007년 6월 16일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영어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캐나다 윈저대 교육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 원어민 영어교사 초청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세 살 때 옆집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한국식 두부찌개와 일본식 생선초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그 댁 부모님이 한국인과 일본인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아시아에서 영어교육을 하고 싶었어요.”(마티나) 사이먼 역시 토론토에서 한국인 교포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대학 시절 먹은 비빔밥과 김치찌개 맛을 잊지 못했다.

둘은 부천 집에 도착하자마자 싸구려 디지털카메라로 밤을 꼬박 새워가며 동영상 하나를 만들었다. 영어로 소개하는 순두부찌개 요리법이었다.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캐나다 지인들에게 “한국은 안전하며 밥 잘 해먹고 잘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뒤 한국에서의 첫 잠을 청했다.

6월 1일부터 부천여고(마티나)와 상일중(사이먼)에서 원어민 영어교사 생활을 시작하는 한편으로 짬짬이 계란찜, 라면, 떡볶이 등 한국의 먹을거리와 온돌방, 배달음식 시켜 먹는 법 등 일상에서 겪은 한국 문화의 특징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블로그에 게재했다. 이 부부의 비디오는 석 달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외국인 사이에서 ‘최고의 한국 가이드’로 소문이 났다. 방문자가 늘자 블로그 이름도 ‘사이먼&마티나’에서 ‘잇 유어 김치’로 바꿨다.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이 고기만 먹으면 엄마들이 건강을 위해 ‘잇 유어 베지터블(eat your vegetable)’이라고 말하거든요. 잇 유어 김치는 몸에 좋은 한국문화를 즐기라는 뜻이에요.”(마티나)


○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배운 케이팝

11월이 되자 두 사람에게 비슷한 걱정거리가 생겼다. 한국 학생들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다. 고민하던 마티나의 귀에 수업 중 소곤거리는 학생들의 잡담이 들려왔다.

“‘빅뱅’ 오빠들 정말 ‘짱’이야.” “‘소녀시대’ 옷 봤어?”

여러 학생이 복도에서 동시에 춤을 추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걸그룹 쥬얼리의 뮤직비디오 ‘원모어타임(One More Time)’에 나오는 춤이었다. 퇴근 후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아, 빅뱅과 소녀시대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구나….

그 다음 날 수업시간. 마티나가 전날 외운 빅뱅 멤버 이름과 음악을 입에 올리자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거다!” 그날부터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물어 수첩에 적고 매일 3시간씩 그들의 음악을 연구했다. 1개월 뒤 마티나는 학생들에게 먼저 최신 케이팝 음악을 소개할 정도가 됐다.

아내를 따라 걸그룹 2NE1을 좋아하게 된 사이먼은 케이팝 소개 동영상을 영어로 제작해 블로그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12월 8일. 부부는 스스로 VJ를 맡아 처음 ‘How to Dance K-Pop Style’이란 제목의 4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후 케이팝 소개 동영상 프로그램을 잇달아 블로그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영상 아이디어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두 집에서 했다.

“뮤직비디오 속 댄스부터 가사에 숨겨진 의미, 가수들의 뒷이야기,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연결한 뒤 캐나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듯 설명했어요. 중간 중간 빅뱅의 지드래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등으로 변장해 패러디와 개그도 섞었죠.”(사이먼)

특히 외국인들은 이 부부가 만든 슈퍼주니어의 노래 ‘A-Cha’ 뮤직비디오 소개 동영상에 열광했다. 하늘을 찌르는 손가락 안무를 ‘샌드위치 가게에서 특정 재료로 빵을 채워 달라고 손가락으로 주문하는 상황’에 빗대는 등 유쾌하게 내용을 풀어 설명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뮤직비디오 속 케이팝 스타가 왕이나 신처럼 완벽하게 보여 얼마간의 이질감이 든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이후에도 패러디나 개그로 한바탕 웃고 즐기면서 케이팝을 알아가게끔 동영상을 제작했다.

이윽고 세계 곳곳에서 이들의 비디오가 소문나기 시작했다. 유튜브 내 잇유어김치 블로그의 일일 평균 조회 수는 2010년 1만4000여 건, 2011년 7만여 건으로 급증했다.

2012년 9월 현재 하루 평균 17만여 명이 이들의 블로그를 방문한다. 정기 구독자만 130개국 30만 명이 넘는다. 누적 동영상 조회 수는 8000만 건에 이른다.

급기야 유튜브 측과 동영상 클릭 건수마다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케이팝 동영상으로 큰 수입이 생기자 사이먼은 2010년 10월부터 영어교사를 그만두고 프로그램 만들기에 몰두했다. 이듬해 5월 마티나도 교사직을 접었다. “수업 마치고 교사 업무를 집으로 잔뜩 가져와서 새벽 2시까지 끝낸 뒤에야 다시 옷을 차려입고 화장하고 촬영하곤 했어요. 잠을 쫓기 위해 동네 커피숍에 노트북을 가져가 편집을 하고…. 제자들과의 정 때문에 견뎠는데, 교사를 그만둘 때 많이 울었어요.”(마티나)


○ “세계의 방송에 우리 프로그램 선보일 것”

한국에 온 지 4년. 둘은 또 다른 한류 스타가 됐다. 10월에는 멕시코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팬 미팅도 할 예정이다. 전문 콘텐츠 제작회사를 세울 계획도 세웠다. 이달 초 비디오 제작 스튜디오 대여 비용을 마련하려고 인터넷 모금사이트를 개설하자 전 세계 누리꾼들이 일주일 만에 약 1억 원을 기부했다. 영어교사로 한국을 찾았던 캐나다인 부부는 이제 인터넷을 넘어 각 나라의 지상파 방송사에 자신들이 만든 케이팝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외국인 시각에서 보면 케이팝은 서브컬처(Sub-Culture·지배적 문화가 아닌 주변 계층 문화)예요. 주류 팝뮤직에 싫증이 나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려는 외국인이 많으니 케이팝의 인기는 갈수록 커질 겁니다. 단, 케이팝에는 잘못된 영어 가사가 많은데 고쳐야 해요. 멋진 음악이라고 소개해도 엉터리 영어 가사를 듣고는 오히려 그저 웃고 넘기는 음악으로만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습니다.”(사이먼)

“최근에는 잇유어김치 블로그에 한국 인디음악을 소개하는 코너도 만들었답니다. 방송을 하면 뉴질랜드부터 영국, 남미 등 세계 곳곳의 음악 팬들이 댓글을 달아요. 케이팝을 통해 세계인들과 가족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든 케이팝 프로그램으로 세계인을 모아 ‘코리아 클럽’을 만들 겁니다.”(마티나)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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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유튜브 통해 한국 문화와 알리는 사이먼-마티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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