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ger→slave, 美 ‘허클베리…’ 개정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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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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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망 100주기를 맞아 활발하게 재조명됐던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사진)이 새해 초부터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1884년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개정판 출간을 둘러싼 논란이다. 논란은 앨라배마 주 오번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앨런 그리븐 교수와 뉴사우스북스라는 출판사로부터 비롯됐다. 그리븐 교수는 원작에 있는 ‘nigger(검둥이)’라는 단어를 ‘slave(노예)’로 바꾼 개정판을 뉴사우스북스를 통해 2월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 단어를 교체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븐 교수는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허클베리 핀’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nigger’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금기어다. 이번 논란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들이 이 단어를 직접 거론하는 대신 이니셜을 활용한 ‘N-word’로 표기할 정도다. 따라서 이 금기어가 219번 등장하는 ‘허클베리 핀’을 필독서 리스트에서 빼는 학교가 많다.

헤밍웨이가 “현대의 미국 문학은 모두 이 한 권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평가하는 작품이 ‘nigger’라는 한 단어 때문에 초중고교 독서 리스트에서 빠지는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게 그리븐 교수의 의도다. 수전 라 로스 뉴사우스북스 대표는 “그 단어가 교체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정판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좋지 않다. 교사 댄 아이버슨 씨는 “이 단어를 없애면 이 책이 나온 시기 미국에 있었던 인종차별의 깊이를 독자들이 정확히 모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는 11일 사설에서 “작품의 언어는 그 시절의 산물이다. 검열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븐 교수를 영국인 토머스 바우들러(1754∼1825)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우들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놓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비춰 불경스러운 표현을 고쳐 개정판을 펴냈던 인물. ‘무단 삭제 또는 정정’을 뜻하는 ‘바우들러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도서관은 주인공의 상스러운 표현이 기독교 정신을 위배한다는 이유로 책이 출간되자마자 도서관 장서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1998년 애리조나 주의 한 지역 고등학교 학부형들은 필독서 리스트에서 빼라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원작이 훼손된 적도 있었다. CBS는 1955년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원작의 흑인 노예 짐 역에 백인을 캐스팅했고 노예에 대한 언급을 모두 피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논란을 전하면서 트웨인이 실제로는 흑인의 권리를 옹호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에 대해 트웨인이 “흑인 노예만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백인들도 자유롭게 한다”고 언급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뉴사우스북스 출판사가 펴내는 개정판에는 ‘톰 소여의 모험’도 묶여 나온다. 이 작품에선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비하해서 부르던 ‘injun’이라는 단어가 ‘indian(인디언)’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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