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몰려오는 일본소설 3색 작가 릴레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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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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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출판계엔 일본 소설이 다시 몰려온다. 다양한 형식 실험과 지성적인 소설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중견작가 시마다 마사히코(49), 일본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여성작가 시바사키 도모카(37),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적 전통을 잇는 차세대 순문학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33)가 국내에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마다와 시바사키 씨는 한중일 문예지에 신작 단편을 동시 게재할 계획이며 나카무라 씨의 장편소설 ‘소매치기’는 5월 중 국내에서 출간된다. 국내의 일본 소설 인기에 편승해 상업성 위주의 작품들이 무분별하게 번역되고 있지만, 이들은 자국 문학 출판계에서도 주목 받는 인기 작가들이다.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문학관을 지닌 이들은 오늘날 일본 문학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도쿄에서 이들을 직접 만났다.》

“한국의 日문학 편애, 교류로 격차 줄여야”

■ 시마다 마사히코 씨
“한국서 인기있다는 日작가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사람”

5일 저녁 시마다 마사히코 씨를 만난 곳은 도쿄 신주쿠 인근의 30여 년 된 술집이었다.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 종종 낭독회를 갖는 문인들의 단골집이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쇼와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등장한 배우 같았다.

시마다 씨는 “시부야처럼 첨단의 절정에 있는 거리들이 오히려 촌스럽다. 도시라면 이곳처럼 오래된 건물과 거리가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서울도 도심보다 청량리처럼 옛 정취가 남은 곳을 좋아했는데 자꾸 재개발이 된다니 아쉽다”고 덧붙였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의 일본 측 집행위원장이며 2008년 고려대에서 강의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아쿠타가와 상을 받지 않은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작가에 꼽힌다. 하지만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어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페라와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2007년에는 장쯔이와 함께 패션지 화보를 찍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캐릭터의 작가다. 그는 “문학이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학문이 결국 인간의 욕망을 언어로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며 문학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삼갔다.

그의 소설적 특색은 다채로운 형식적 실험과 폭넓은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지적인 면모에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메시지나 메타포(은유)이지 형식이 아니다”라면서도 “가구를 짜 맞추듯 소설 내용에 어울리는 형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한중일 3국의 문예지인 ‘신초’ ‘자음과 모음’ ‘소설계’를 통해 동시에 선보일 신작 ‘사도동경(死都東京)’은 트위터의 형식을 빌려 한 단락을 140자로 구성했다.

“문단(文壇)이란 각 나라의 언어에 의해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작품 교류라는 통합적인 작업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습니다. 일본 문학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우선 그 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작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예를 들어 그 사람이 한국에서 인기 작가라고 하면 부끄러워할 일본 사람이 많다는 건 알아두라”고도 말했다. 보도가 되어도 괜찮겠느냐고 묻자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소한 일에서 시작, 상상력 넓히려 노력”

■ 시바사키 도모카 씨
“일상 얘기 계속 다루겠지만 시공간 초월 작품 써보고파”


시바사키 도모카 씨는 ‘일본의 김애란’ 같은 작가다. 그는 젊은이들이 겪는 삶의 애환, 소소한 일상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책 중 ‘오늘의 사건 사고’는 쓰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한 같은 이름의 영화의 원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올해 5월에는 신작 단편 ‘하르툼에 나는 없다’를 한중일 계간지 동시 연재로 선보일 예정이기도 하다.

6일 오전 도쿄 신주쿠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등을 보며 한국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들이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더 고민하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동시대인들의 감수성과 삶의 애환에 대한 고민은 문학적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는 ‘만날 수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작품 곳곳에 담아낸다. “사소한 일들을 시작으로 상상력을 넓혀가는 작품들을 쓰는 게 좋습니다. 평범하지만 독특한 주변의 일들을 발견해내고 그런 것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보도록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사소한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메모해두거나 사진을 찍어둔다. 젊은 세대의 일상 풍경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이 작가에게 일본 젊은 세대의 고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청춘은 언제나 불안하지만 극복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인 것 같다”며 “이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장편소설이다.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과 똑같은 얼굴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모티브를 ‘겨울연가’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문학에서 배제됐던 주변, 일상의 이야기를 계속 다룰 것”이라며 “일상에서 출발해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 내면 파고들어 다른 세상 보여줄 것”

■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
“말초적이고 단순해진 세상
문학의 역할 갈수록 중요”


도쿄 진보초 역 주변은 슈에이샤, 문예춘추 등 일본의 대형 출판사들과 헌책방 거리가 함께하는 ‘책의 공간’이다. 4일 저녁 이 거리에 있는 한 이자카야에서 일본의 젊은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를 만났다.

나카무라 씨는 2005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차세대 순문학 주자로 주목받은 작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 ‘흙으로 만든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는 인간의 폭력성과 죄악 등에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그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미한 최근작 ‘소매치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중성도 확보했다. 이 작품은 한국에 5월 중 출간된다. “원고 청탁이 쏟아져 눈만 뜨면 계속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는 그의 말이 이 작가에 대한 일본 출판계의 관심을 대변한다.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가 일본 문예지 ‘스바루’와 한국의 ‘자음과 모음’에 동시 연재되며 한국과 인연을 쌓은 나카무라 씨는 최근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화제에 올렸다.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 중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한국을 이렇게 각별하고 친근하게 여기게 될 줄 스스로도 몰랐습니다. 내 작품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가 내 나라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가의 문학관은 뚜렷했다. 그는 “역동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소설을 써서 독자들에게 또 다른 세상을 선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자이 오사무나 나쓰메 소세키의 (순수문학적) 전통을 잇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세상이 점차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말초적인 정보에 사람들이 더 쉽게 반응하는 거죠. 시스템이 진보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해집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문학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차기작으로 쓰고 있는 작품은 성형수술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소매치기’에서 시도했듯이 장르적인 요소를 도입해 스토리의 가독성을 염두에 뒀다. 그는 “장르적인 요소를 담으니 대중적 호응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순문학을 엔터테인먼트에 융합한 작품을 계속 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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